당시/왕유 시전집

왕유 시전집 6

truth-1 2025. 4. 15. 16:09

권6 편년시(編年詩) 지덕(至德), 건원(乾元, 상원(上元)

 

菩提寺禁, 裴迪來相看, 說逆賊等凝碧池上作音樂, 供奉人等擧聲便一時淚下. 私成口號, 誦示裴迪.(보리사금, 배적래상간, 설역적등응벽지상작음악, 공봉인등거성편일시누하, 사성구호, 송시배적.)

 

보리사에 구금되어 있다 배적이 찾아와 만나 보았다. 말하기를, 역적들이 응벽지 가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는데 악공들이 소리를 내려다 문득 일시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고 한다. 몰래 입에서 나오는대로 시를 지어 배적에게 읊어 주었다.

 

* 보리사(菩提寺) : 작자가 안록산 반군에게 억류되어 있던 절의 이름. * 배적(裴迪) : 개원(開元) 말기에 장구령(張九齡)이 좌천되어 있던 형주(荊州) 막부에 있다 후에 장안으로 돌아와 천보 연간 초에 왕유, 최흥종과 종남산에 은거하였음. 왕유는 망천 별장에서 배를 타고 배적과 왕래하였음. 후에 상서성(尙書省)에 보직되었다 상원 원년에 촉에 사자로 갔다 머물며 촉주자사의 속관으로 있으며 두보와 창화하였다. * 응벽지(凝碧池) : 낙양의 금원(禁苑)에 있던 못 이름. 낙양이 함락된 뒤 안록산이 응벽지에서 부하들과 연회를 하였음. * 공봉인(供奉人) : 본래 궁중에서 천자를 모시던 사람을 가리키며, 여기서는 악공(樂工)을 가리켜 말한 것임. * 구호(口號) :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어 지은 시. 구점(口占)과 같음.

 

 

萬戶傷心生野烟(만호상심생야연) 온 백성들 들판의 전화에 상심하는데

百官何日再朝天(백관하일재조천) 백관들 어느 날 다시금 조회를 하리?

秋槐葉落空宮裏(추괴엽락공궁리) 텅 빈 궁중에 가을 홰나무 낙엽 지는데

凝碧池頭奏管絃(응벽지두주관현) 응벽지 가에서 풍악을 울리려고 하다니...

 

* 야연(野烟) :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켜 생겨난 전화(戰火)를 비유한 것임. * 조천(朝天) : 천자를 알현하는 것을 가리킴. * 관현(管絃) : 관악기와 현악기.

 

 

口號又示裴迪(구호, 우시배적) 입에서 나오는대로 지어 또 배적에게 들려줌

 

* 구호(口號) :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어 지은 시. 구점(口占)과 같음. * 배적(裴迪) : 개원(開元) 말기에 장구령(張九齡)이 좌천되어 있던 형주(荊州) 막부에 있다 후에 장안으로 돌아와 천보 연간 초에 왕유, 최흥종과 종남산에 은거하였음. 왕유는 망천 별장에서 배를 타고 배적과 왕래하였음. 후에 상서성(尙書省)에 보직되었다 상원 원년에 촉에 사자로 갔다 머물며 촉주자사의 속관으로 있으며 두보와 창화하였다.

 

安得舍塵網(안득사진망) 세상 그물 어찌해야 벗어나리오?

拂衣辭世喧(불의사세훤) 옷깃 떨치고 시끄러운 세상 떠나리.

悠然策藜杖(유연책려장) 유유자적 명아주 지팡이 짚고

歸向桃花源(귀향도화원) 도화원 향하여 돌아가고 말리라.

 

* 진망(塵網) : 진세(塵世)의 그물. 세상살이의 구속을 가리킴. * 불의(拂衣) : 옷깃을 떨치고 떠나간다는 뜻으로, 결별을 의미한다. * 세훤(世喧) : 세상의 시끄럽고 소란스러움. * 책려장(策藜杖) : 지팡이를 짚다. 여장은 크게 자란 명아주를 말려 만든 가벼운 지팡이. * 도화원(桃花源) :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묘사된 낙원. 무릉의 어부가 우연히 도화원에 들어가 세상과 격리된 채 평화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주민들을 만났으나 후에 다시 찾을 길이 없었다는 내용이다.

 

 

 

 

旣蒙宥罪, 旋復拜官, 伏感聖恩, 竊書鄙意, 兼奉簡新除使君等諸公. (기몽유죄, 선부배관, 복감성은, 절서비의, 겸봉간신제사군등제공.)

 

죄 사함을 받은 후 머잖아 다시 관직을 받게 되니 엎드려 성은에 감격하며 미천한 뜻을 글로 쓰고, 겸하여 새로 사군에 제수된 여러 공들께 간찰에 적어 올린다.

 

* 유죄(宥罪) : 왕유는 안록산이 난을 일으킨 후 적에게 잡혀 강제로 관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로 인해 도읍을 수복한 후 옥에게 갇혔다가 숙종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太子中尹에 임명되었다. * 사군(使君) : 주군(州郡)의 장관을 가리킴. 자사(刺史)와 같음.

 

 

忽蒙漢詔還冠冕(홀몽한조환관면) 홀연 어명 받잡고 벼슬 회복했으니

始覺殷王解網羅(시각은왕해망라) 탕왕이 그물 푼 일 비로소 깨닫게 되네.

日比皇明猶自暗(일비황명유자암) 임금의 밝으심에 비하면 해도 외려 어둡고

天齊聖壽未云多(천제성수미운다) 임금의 수명이 하늘과 같아도 많다 못하리.

花迎喜氣皆知笑(화영희기개지소) 꽃은 기쁜 소식 맞아 모두가 웃음을 짓고

鳥識歡心亦解歌(조식환심역해가) 새도 즐거운 심정 알아 역시 노래를 하네.

聞道百城新佩印(문도백성신패인) 듣자니 사군들 새로이 임명됐다 하는데

還來雙闕共鳴珂(환래쌍궐공명가) 함께 말 장식 울리며 궁궐 향해 간다네.

 

* 한조(漢詔) : 당나라를 한나라에 견주어 말한 것으로, 황제의 조명을 가리킴. * 관면(冠冕) : 벼슬을 가리킴. * 해나망(解網羅) : : 은(殷)의 탕왕(湯王)이 들에 나갔다 짐승을 잡기 위해 사방으로 그물을 친 것을 보고 한 방면에만 남겨두고 나머지 그물을 다 걷게 하였다. 천자가 법을 집행함에 너그러움을 비유한 것이다. * 황명(皇明) : 황제의 명철함. 황제를 가리키기도 함. * 성수(聖壽) : 황제의 나이를 가리킴. * 백성(百城) : 자사(刺史)의 관할지를 비유한 것으로, 지방장관을 가리키기도 함. * 패인(佩印) : 관인을 찬다는 뜻으로 지방장관에 임명됨을 가리킴. * 가(珂) : 말의 재갈에 다는 장식. 이 구절은 새로 사군에 제수된 이들이 말을 타고 궁전으로 가서 임금께 사례함을 가리킨다.

 

 

和賈舍人早朝大明宮之作(화가사인조조대명궁지작) 중서사인 가지의 ‘대명궁에서의 아침 조회’ 시에 화답함

 

* 가사인(賈舍人) : 가지(賈至). 자는 유린(幼隣), 낙양(洛陽)사람. 현종 천보 말년부터 숙종 건원 원년까지 중서사인(中書舍人)으로 있었다. 조조(早朝) : 아침 조회. * 대명궁(大明宮) : 장안성 밖 동북쪽에 있던 궁. 후에 봉래궁(蓬萊宮)으로 이름이 바뀌었음.

 

絳幘雞人送曉籌(강책계인송효주) 붉은 두건 쓴 계인이 새벽 시각 알리니

尙衣方進翠雲裘(상의방진취운구) 상의관은 비취색에 구름무늬 갓옷 올리네.

九天閶闔開宮殿(구천창합개궁전) 드높은 하늘 문 열리듯 궁전 열어놓으니

萬國衣冠拜冕旒(만국의관배면류) 온 나라 백관들 면류관 앞 절을 올린다.

日色纔臨仙掌動(일색재림선장동) 막 햇살 비춰오자 신선의 손바닥 움직이는 듯

香烟欲傍袞龍浮(향연욕방곤룡부) 곁에 향로 연기일자 곤룡포의 용 떠오르는 듯.

朝罷須裁五色詔(조파수재오색조) 조회 파하고 오색 종이에 조서를 기초하고자

珮聲歸向鳳池頭(패성귀향봉지두) 패옥 소리 울리며 봉황지 연못가로 돌아오네.

 

* 강책계인(絳幘雞人) : 궁중에서 시간을 알리는 사람. 궁중에서 닭을 기를 수 없어 그 대신 닭벼슬 같은 붉은색 두건을 쓰고 닭울음소리를 내어 때를 알렸다고 함. 송효주(送曉籌) : 새벽 시간을 적은 대쪽을 보내다. 여기서 籌는 대쪽에다 밤 시간을 기록해 알리던 ‘경주(更籌)’를 가리킴. * 상의(尙衣) : 상의국(尙衣局). 천자의 의관을 담당하였다. * 취운구(翠雲裘) : 녹색의 깃털을 엮어 만든 구름무늬 갓옷. 천자가 착용하던 옷을 가리킴. * 구천(九天) : 구중천(九重天). 옛사람은 하늘이 아홉 층으로 되어 있다고 여겼음. 황궁 혹은 천자를 비유하는 말로도 쓰임. * 창합(閶闔) : 하늘에 있다는 전설 속의 문. 궁문을 비유한 것임. * 의관(衣冠) : 벼슬아치, 백관(百官)을 비유함. * 면류(冕旒) : 임금이 착용하는 관. 천자를 비유한 것임. * 선장(仙掌) : 선인장(仙人掌). 한무제가 만든 신선 동상의 손바닥. 이슬을 받는 승로반(承露盤)을 받들고 있음. * 곤룡(袞龍) : 천자의 예복인 곤룡포에 새겨진 용을 가리킴. * 오색조(五色詔) : 오색의 아름다운 종이에 쓴 조서. * 봉지(鳳池) : 봉황지(鳳凰池). 본래 금원(禁苑)의 연못을 가리키는 말이나 위진남북조 시대에 황제 가까이에서 기밀을 다루는 중서성(中書省)을 거기에 설치하여 중서성의 대명사가 되었음.

 

 

晩春, 嚴少尹與諸公見過(만춘, 엄소윤여제공견과) 늦봄에 엄소윤과 여러 공들이 찾아주어

 

* 엄소윤(嚴少尹) : 경조소윤(京兆少尹)으로 있던 엄무(嚴武)를 가리킴. 소윤은 관직명으로 경조, 하남, 태원 등의 관부에 종3품의 尹 1인, 종4품의 소윤 2인을 두었다. 후에 엄무는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 성도부윤(成都府尹)을 지냈으며 토번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워 검교이부상서(檢校吏部尙書)가 되었다. 성도에 있을 때는 두보를 적극 후원하였다.

 

松菊荒三徑(송국황삼경) 거친 세 오솔길에 솔과 국화 자라고

圖書共五車(도서공오거) 서책은 수레 다섯 실을 만큼 있다오.

烹葵邀上客(팽규요상객) 아욱 삶아놓고 귀한 손님 맞거늘

看竹到貧家(간죽도빈가) 대를 감상코자 가난한 집 찾아주셨네.

鵲乳先春草(작유선춘초) 까치는 봄풀 푸르기 전 알을 깠으며

鶯啼過落花(앵제과낙화) 꾀꼬리는 낙화시절 지나 울고 있구나.

自憐黃髮暮(자련황발모) 스스로 가련해라, 누런 머리 늘그막

一倍惜年華(일배석연화) 이제는 가는 세월 더욱 안타깝도다.

 

* 삼경(三徑) : 은자가 사는 곳을 가리킴. 한나라의 장후(蔣詡)가 정원에 세 개의 좁은 길을 내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를 심었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 오거(五車) : 책이 많거나 학식이 깊음을 비유함. 오거서(五車書). 《莊子․天下》에 "혜시는 학식이 다방면에 걸쳐 있었으며, 그가 읽은 책은 다섯 수레나 된다.“(惠施多方, 其書五車)는 구절이 있음. * 간죽(看竹) : 진(晋) 왕휘지(王徽之)는 대나무를 몹시 애호하여 좋은 대나무가 있으면 찾아가 감상하기를 즐겼다. * 작유(鵲乳) : 어린 새끼를 乳라고 한다.

 

 

酬嚴少尹徐舍人見過不遇(수엄소윤서사인견과불우) 엄소윤과 서사인의 ‘방문했다 만나지 못하고’ 시에 수답함

 

* 엄소윤(嚴少尹) : 엄무(嚴武)를 가리킴. 안록산의 난이 발생했을 때 현종을 수행해 촉(蜀)으로 들어가 간의대부(谏议大夫)에 발탁되었다. 장안이 수복된 후 32세의 나이로 경조소윤을 지냈다. 숙종 상원 2年(761)에 성도윤, 겸검남절도사가 되었다. 소윤은 종4품의 벼슬이다. * 서사인(徐舍人) : 서호(徐浩). 양양태수(襄陽太守)를 거쳐 숙종 즉위 후에 중서사인에 임명되었다.

 

公門暇日少(공문가일소) 관청에는 한가한 날 적으며

窮巷故人稀(궁항고인희) 궁벽한 동네엔 친구 드무네.

偶値乘籃轝(우치승남여) 우연히 남여 타고 외출했으니

非關避白衣(비관피백의) 심부름꾼 피하려 한 것 아니오.

不知炊黍否(부지취서부) 밥은 자시고 갔나 모르겠으며

誰解掃荊扉(수해소형비) 누가 사립문 쓸고 맞이하였소?

君但傾茶椀(군단경다완) 그대들 찻사발만 기울였다면

無妨騎馬歸(무방기마귀) 말 타고 가기에는 괜찮았으리.

 

* 공문(公門) : 관청을 가리킴. * 남여(籃轝) : 대나무를 엮어 만든 가마. 轝는 輿와 같음. 동진의 은사 도연명이 다리가 아파 남여를 탔었다. * 백의(白衣) : 관청에서 잡일을 맡아하는 심부름꾼이나 밑에 두고 부리는 측근, 하인배 따위를 가킴. 중양절에 강주 태수(江州太守) 왕홍(王弘)이 백의사자(白衣使者)를 시켜 도연명에게 술을 보낸 고사가 있다. 여기서는 엄무와 서호를 직접 가리키기가 뭐해 대신 그 하인을 언급한 것임. * 취서(炊黍) : 밥을 하다. 黍는 기장으로 곡식에 대한 총칭으로 쓰인 것임. * 해(解) : ~할 수 있다. ~를 잘 하다. * 소형비(掃荊扉) : 사립문을 쓸다. 문 앞을 쓸고 손님을 맞이한다는 뜻. * 무방(無妨) ~ : 해학적인 표현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고 차만 마셨다면 맨 정신이라 말 타고 가는 데 문제가 없으리란 뜻.

 

 

同崔傅答賢弟(동최부답현제) 최부의 〈답현제〉에 화운함

 

* 최부(崔傅) : 제왕부(濟王傅)를 지낸 최원(崔圓)을 가리킨다. 현종 때 촉군대도둑부좌사마, 검남유후를 지냈다. 숙종 때에는 중서령, 동경류수를 역임했다. 그 후 제왕부를 거쳐 회주자사, 분주자사, 양주대도독부장사, 회남절도관찰사를 역임했다. * 현제(賢弟) : 자기의 동생 혹은 남의 동생을 높여 부르는 말.

 

洛陽才子姑蘇客(낙양재자고소객) 낙양 재자가 고소성 나그네 되었으니

桂苑殊非故鄕陌(계원수비고향백) 계림원은 결코 고향땅 될 수 없건만,

九江楓樹幾回靑(구강풍수기회청) 구강의 단풍나무 몇 번을 푸르렀던가?

一片揚州五湖白(일편양주오호백) 한 조각 양주 땅에 오호 물결 허였네.

揚州時有下江兵(양주시유하강병) 양주 땅에 마침 반란의 무리 생겨나고

蘭陵鎭前吹笛聲(난릉진전취적성) 난릉성 앞 병사의 피리 소리 울려 퍼지니,

夜火人歸富春郭(야화인귀부춘곽) 밤불 밝혀 사람들 부춘 외곽 피난 가는데

秋風鶴唳石頭城(추풍학려석두성) 가을바람과 학 울음 석두성에서 들려오리.

周郎陸弟爲儔侶(주랑육제위주려) 주유와 육운 같은 이가 짝을 이루었으니

對舞前溪歌白紵(대무전계가백저) 마주해 전계가에 춤추고 백저무 노래하며,

曲机書留小史家(곡궤서류소사가) 왕희지처럼 문생 집 탁자 위에 글을 남기고

草堂碁賭山陰墅(초당기도산음서) 사안처럼 초당에서 산음 별장 내기바둑 두리.

衣冠若話外臺臣(의관약화외대신) 조정 고관들 지방의 관리 평가할 것 같으면

先數夫君席上珍(선수부군석상진) 그대의 자리 위 보물 같은 아우 우선 손꼽고,

更聞臺閣求三語(갱문대각구삼어) 또한 듣자하니 대각에서 속관을 구한다는데

遙想風流第一人(요상풍류제일인) 저 멀리 첫째가는 풍류 재자가인 떠오른다오.

 

* 낙양재자(洛陽才子) : 낙양 출신의 재자. 본래 한나라의 가의(賈誼)를 일컬은 말인데, 여기서는 최원의 동생을 가리킴. * 고소(姑蘇) : 강소성 동남쪽 태호(太湖) 가에 있는 소주(蘇州)의 별칭. 최원의 동생이 객지인 소주에서 관원 생활을 하였음. * 계원(桂苑) : 계림원(桂林苑). 오나라 때 세워진 동산. 지금 남경 지역인 승주(升州)의 상원현(上元縣)에 있었음. * 수(殊) : ‘終’과 같은 뜻임. 결국, 마침내, 끝내. * 맥(陌) : 도로, 길거리. 여기서는 지역을 의미함. * 구강(九江) : 심양(潯陽) 인근을 흐르는 아홉 갈래의 강줄기. 동으로 흘러 장강과 합류한다. * 양주(揚州) : 한나라 때의 주명(州名). 지금의 안휘성의 회수와 강소성의 장강 이남 및 강서, 절강, 복건 등지를 관할하였다. * 오호(五湖) : 태호(太湖)의 별칭. 혹은 태호 동쪽에 있는 다섯 호수를 가리키기도 함. * 하강병(下江兵) : 조정에 반항하는 군대를 가리킨다. 본래 왕망(王莽)이 세운 신(新) 말기에 봉기한 농민 반란군 일파의 호칭이다. 여기서는 영왕(永王) 이린(李璘)에 속해 있던 광릉(廣陵) 일대의 병력을 가리킨다. 영왕은 금릉을 거점으로 세력을 키우기 위해 진군했으나 광릉장사(廣陵長史)의 저지로 군대가 궤멸된 후 피살을 당하였다. 하강은 본래 장강의 강릉 이하 하류를 지칭하는 말. * 난릉진(蘭陵鎭) : 상주(常州) 북쪽 80리에 있는 만세진(萬歲鎭)의 서남쪽에 있던 성. 적(笛) : 군대에서 부는 피리를 가리킴. * 부춘(富春) : 절강(浙江) 동북쪽에 위치한 富陽縣 지역을 가리킨다. * 추풍학려(秋風鶴唳) : 비수(淝水)에서 동진(東晉)에게 격파된 전진(前秦) 부견(苻堅)의 군사들이 도주하다가 바람소리와 학 울음소리를 듣고 두려워했다는 고사가 있음. * 석두성(石頭城) : 상원현(上元縣) 서쪽에 있던 성. 삼국 오(吳)가 견고하게 성을 쌓고 군량과 병장기를 보관했던 곳이다. * 주랑(周郎) : 삼국 오(吳)의 주유(周瑜)를 가리킴. 여기서는 시에서 다뤄지고 있는 해당지역인 강남도(江南道)의 채방사(採訪使)와 같은 고위관리를 비유한 것이다. * 육제(陸弟) : 남조 진(晋)의 문인 육운(陸雲)을 가리킴. 형인 육기(陸機)와 더불어 문장으로 이름이 나란하였다. 여기서는 최원의 동생을 비유한 것이다. * 전계(前溪) : 전계가(前溪歌). 진(晋)의 거기장군(車騎將軍) 심충(沈珫)이 만든 무곡. 전계는 호주(湖州) 덕청현(德淸縣)에 있던 촌락의 이름으로 남조의 음악이 전수되던 고장이다. * 백저(白紵) : 백저무(白紵舞). 오(吳) 지역의 무용. 오땅은 흰 모시의 산지로 유명하며, 춤을 출 때 부르는 노래에 흰모시를 자랑하는 내용이 있다. * 곡궤(曲机) : 굴곡이 있는 목재로 만든 작은 탁자. 机는 앉을 때 기대거나 물건을 올려놓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 소사(小史) : 잡무를 도와 글을 베껴 쓰거나 시종을 드는 서동(書童)을 가리킴. 이 구절은 진(晋)의 명필 왕희지(王羲之)가 문생의 집에 갔다가 탁자 위에 글씨를 써 남긴 고사를 차용한 것임. 진대의 문생은 스승을 위해 시중을 들었기에 ‘소사’라고 칭한 것임. * 초당(草堂) : 진(晋)의 사안(謝安)의 별장을 가리킴. * 기도(碁賭) : 바둑을 두어 내기를 하다. * 산음서(山陰墅) : 산음의 별장. 사안의 별장이 회계군(會稽郡)에 있었기에 그 치소가 있던 산음현으로 대신 가리킨 것이다.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침략했을 때, 사안이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에 임명되어 별장에서 출발하기 전에 조카 사현(謝玄)과 그 별장을 두고 내기 바둑을 둔 고사가 있다. * 의관(衣冠) : 사대부를 가리킴. 여기서는 특히 조정의 관원을 가리킴. * 외대신(外臺臣) : 지방관을 가리킴. * 부군(夫君) : 남자에 대한 존칭. 여기서는 최원을 가리킴. * 석상진(席上珍) : 좌석 위의 진귀한 보물. 재주와 덕망이 뛰어난 사람을 비유한 것임. 여기서는 최원의 동생을 가리킴. * 대각(臺閣) : 상서성, 중서성, 문하성 3성을 가리킴. * 삼어(三語) : 삼어연(三語掾)의 줄임말. 막부의 관원이나 일반적인 속관에 대한 미칭. 진(晋)의 완첨(阮瞻)이 유가와 노장의 같고 다름을 묻는 질문에 ‘장무동(將無同)’ 세 마디로 답하고 보좌관에 기용된 고사가 있음. * 풍류(風流) : 비범한 재능과 학식을 지닌 걸출한 인물을 가리킴.

 

 

和宋中丞夏日游福賢觀天長寺之作.(화송중승하일유복현관천장사지작. 즉진좌상소시) 송중승의 ‘여름날 복현관과 천장사에 노닐며 지은 시’에 화답함.(진좌상이 시주한 것이다)

 

* 송중승(宋中丞) : 송약사(宋若思)를 가리킴. 중승은 어사대(御史臺)에 속한 관원으로 정5품. 불법행위를 규찰하고 탄핵하는 일을 담당하였음. * 시제 아래에 ‘즉진좌상소시(卽陳左相所施 : 진좌상이 시주한 것이다)’라는 주가 붙어 있다. 진좌상(陳左相)은 진희열(陳希烈)을 가리킴. 노장에 해박하여 현종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좌승상 등의 고위관직을 역임하였음. 후에 안록산 반란군의 포로가 되어 재상의 관직을 받은 죄로 사사되었음. 복현관(福賢觀)과 천장사(天長寺)는 그 전에 진희열이 산장을 시주하여 만든 도관과 사찰이며,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반계(磻溪) 근처에 있었다.

 

 

已相殷王國(이상은왕국) 전에 은나라의 재상 된 적 있으나

空餘尙父溪(공여상보계) 다만 상보계 근처에 옛집 남았거늘,

釣磯開月殿(조기개월전) 낚시터 바윗가에는 불전이 열렸으며

築道出雲梯(축도출운제) 길을 닦아 우화등선의 길 드러나네.

積水浮香象(적수부향상) 못에는 향기로운 코끼리 떠다니고

深山鳴白雞(심산명백계) 깊숙한 산중에는 흰 닭이 우는데,

虛空陳伎樂(허공진기악) 허공 위에서 춤추고 노래를 하며

衣服製虹霓(의복제홍예) 의복은 무지개 마름하여 만들었네.

墨點三千界(묵점삼천계) 삼천대천세계에 먹으로 점을 찍으며

丹飛六一泥(단비육일니) 육일니로 봉하여 단약을 고아내거늘,

桃源勿遽返(도원물거반) 도원 같은 곳에서 서둘러 오지는 마오.

再訪恐君迷(재방공군미) 다시 찾았다 그대 헤맬까 염려되나니.

 

* 이상은왕국(已相殷王國) : 진희열이 안록산에 의해 강제로 재상에 임명된 사실을 암유한 것. 반란 후 국호를 연(燕)으로 정하고 황제를 참칭한 안록산을 은나라의 폭군 주(紂)에 비긴 것이다. * 상보계(尙父溪) : 반계(磻溪)를 가리킴. 주나라 무왕이 상보라 높여 부르던 강태공(姜太公) 여상(呂尙)이 낚시하던 시내로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동남쪽에 있음. 진희열의 별장이었던 복현관과 천장사가 그 부근에 있으며, 진희열이 한때 당현종의 총애를 받았기에 같이 언급한 것임. * 월전(月殿) : 불서에서 월천자(月天子)가 산다는 궁전. 불교사원을 가리킴. * 운제(雲梯) : 구름 사닥다리.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비유한 것임. * 적수(積水) : 물이 그득한 못을 가리킴. * 향상(香象) : 청향상(靑香象). 불경에 나오는 푸른색에 향기가 나는 코끼리. * 백계(白雞) : 전설에 도사가 길러 사악함을 막아낸다는 흰색의 닭. * 기악(伎樂) : 불경에 모든 하늘의 음악과 무용이 일시에 연주된다는 이야기가 있음. 이 구절은 천장사 안에 하늘을 나르며 기악을 연주하는 그림이 있음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짐. * 홍예(虹霓) : 도사의 복장인 하피(霞帔)를 가리킴. 구름과 노을, 꽃무늬 장식이 되어 있다. 목에 둘러 가슴 앞 양쪽으로 드리워 착용함. * 삼천계(三千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가리킴. 소천, 중천, 대천의 세 천세계가 이루어진 세계. 이 끝없는 세계가 하나의 부처가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法華經․化城喩品》, “비유컨대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 있는 땅덩어리를 갈아 먹으로 만들고는 동방의 一千 국토를 지나가 점 하나를 찍되, 크기는 작은 티끌과 같이 한다. 또 일천 국토를 지나가 다시 한 점을 찍으니, 이와 같이 하여 두루 다니면서 땅덩어리에 먹을 다 함과 같다. 너희들의 뜻은 어떠하뇨? 이 모든 국토를 혹 산수(算數)를 가르치는 선생이나 산수를 배우는 제자라면 능히 이 끝을 알며 그 수를 알 수 있겠느냐?” 이 구절은 승려들이 성불하기 위해 수행함을 말한 것이다. * 단비(丹飛) : 단약을 만들다. 약재를 갈아낸 후 그 가루를 물에 띄워 표면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을 飛라 한다. * 육일니(六一泥) : 단약을 만드는 약로(藥爐)를 밀봉하는 데 쓰이는 진흙 같은 재료. 여섯에 하나를 더한 일곱 종류를 혼합해 만들어서 생겨난 이름. * 도원(桃源) : 사찰과 도관을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이상향에 빗댄 것임.

 

 

春夜竹亭, 贈錢少府歸藍田(춘야죽정, 증전소부귀남전) 봄밤에 죽정에서. 남전으로 돌아가는 전소부에게 줌

 

* 죽정(竹亭) : 대나무로 만든 정자. 혹은 대나무 숲에 있는 정자를 가리키기도 함. * 전소부(錢少府) : 전기(錢起)를 가리킴. 소부는 현위(縣尉)의 별칭. 천보 9년에 진사가 되었으며 처음 비서성 교서랑에 임명되었다. 천보 말년에 남전현위(藍田縣尉)가 되었으며, 그 곳에 집을 마련해 두었다. 건원 원년에 경기의 어느 고을에 현위로 부임했다가 보응 2년 이후 습유를 지냈다. 대력십재자(大历十才子) 가운데 한 명이다. * 남전(藍田) : 지금 섬서성 남전현. 미옥의 산출지로 유명하다.

 

夜靜羣動息(야정군동식) 밤 고요해 뭇 움직임 멈추었는데

時聞隔林犬(시문격림견) 가끔 수풀 너머 개의 울음 들리네.

卻憶山中時(각억산중시) 문득 산중에 있던 날 떠올리나니

人家澗西遠(인가간서원) 산골 물 서쪽 멀리 인가 있었지.

羨君明發去(선군명발거) 부럽네, 동이 트면 그대 떠나가

采蕨輕軒冕(채궐경헌면) 고사리 캐며 벼슬살이 하찮게 보리.

 

* 군동(羣動) : 각종의 동물. 혹은 움직임이 있는 여러 물체. * 명발(明發) : 동틀 무렵. 여명(黎明)과 같음. * 채궐(采蕨) : 고사리를 캐다. 산나물을 캐어 먹는 은자의 담박한 생활을 의미함. * 헌면(軒冕) : 대부가 타는 수레와 머리에 쓰는 관. 관직 생활을 의미함.

 

 

送錢少府還藍田(송전소부환남전) 남전으로 돌아가는 전소부를 보내며

 

* 전소부(錢少府) : 전기(錢起)를 가리킴. 소부는 현위(縣尉)의 별칭. 천보 9년에 진사가 되었다. 천보 말년에 남전현위(藍田縣尉)가 되었으며, 그 곳에 집을 마련해 두었다. 건원 원년에 경기의 어느 고을에 현위로 부임했다가 보응 2년 이후 습유를 지냈다. 대력십재자(大历十才子) 가운데 한 명이다. * 남전(藍田) : 지금 섬서성 남전현. 미옥의 산출지로 유명하다.

 

草色日向好(초색일향호) 풀빛은 날로 고와지는데

桃源人去稀(도원인거희) 도원으로 떠나는 이 드무네.

手持平子賦(수지평자부) 손에는 장평자의 귀전부 들고

目送老萊衣(목송노래의) 눈은 채색옷의 노래자를 보내네.

每候山櫻發(매후산앵발) 산앵두 꽃 피길 매년 기다리거늘

時同海燕歸(시동해연귀) 바다제비 올 즈음과 같은 때라네.

今年寒食酒(금년한식주) 올해 한식날 술은

應得返柴扉(응득반시비) 꼭 집에 돌아가 마실 수 있으리.

 

* 도원(桃源) : 이상향을 가리킴. 남전의 산수가 아름답고 살기 좋다는 뜻으로 이렇게 부른 것임. * 평자부(平子賦) : 후한의 장형(張衡)이 지은 귀전부(歸田賦)를 가리킴. 평자는 그의 자(子). 이 구절은 시인 자신 처지를 비유한 것임. * 노래자(老萊衣) : 춘추시대 초나라의 은사 노래자(老萊子)는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때때옷을 입고 부모 앞에서 춤을 추며 즐겁게 해드렸다고 함. 이 구절은 전소부의 처지를 배유한 것임. * 해연(海燕) : 제비의 별칭. 제비가 남방에서 바다 건너 찾아온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 이상 두 구는 전소부가 앵두꽃 피고 제비가 올 즈음 휴가를 맞아 부모님을 뵈러 남전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 한식(寒食) : 절기 이름.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 대개 청명(淸明) 하루나 이틀 전에 해당한다. 춘추시대 진(晋)의 개자추(介子推)가 간신에게 몰려 산에 숨어 있을 때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 찾았으나 나오지 않자, 산에 불을 놓아 그를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고 말았다. 이에 그를 기리기 위해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 한다. 한편, 당나라 제도의 의하면 관리는 한식과 청명에 4일의 휴가를 얻었다.

 

 

左掖梨花(좌액이화) 좌액의 배꽃

 

* 좌액(左掖) : 문하성(門下省)을 가리킴. 문하성은 대명궁(大明宮) 선정전(宣政殿)의 왼편에 있어 좌성(左省)이라고도 불림. 반면에 중서성(中書省)은 오른 편에 있어 우액 혹은 우성이라 불림. 掖은 본래 겨드랑이를 가리키며, 곁이나 근방을 뜻하기도 함.

 

閑灑堦邊草(한쇄계변초) 가만히 계단 가 풀에 흩어지고

輕隨箔外風(경수박외풍) 가벼이 발 밖의 바람 따르네.

黃鶯弄不足(황앵농부족) 꾀꼬리는 장난질 못다 했는지

嗛入未央宮(겸입미앙궁) 입에 물고 미앙궁에 날아드네.

 

* 미앙궁(未央宮) : 한나라 때 궁전 이름. 지금 섬서성 서안시 서북쪽 장안 옛성에 터가 남아있다. 여기서는 그를 빌려 당의 황궁을 가리켜 말한 것임.

 

送韋大夫東京留守(송위대부동경유수) 동경유수로 부임하는 어사대부 위척을 보내며

 

* 위대부(韋大夫) : 위척(韋陟). 어사대부(御使大夫), 예부상서, 동경유수를 지냈다. * 동경유수(東京留守) : 동경은 낙양의 별칭. 동도(東都)라고도 불렸음. 서경인 장안, 북경인 태원(太原)과 함께 삼도(三都)로 불렸음. 유수는 삼도에 설치한 관직명으로 그 지방장관이 겸임하며 군사, 행정을 관장하였다.

 

人外遺世慮(인외유세려) 인간세상 밖에서 속된 생각 버리고

空端結遐心(공단결하심) 불문 안에서 초탈한 심경 지니었더니,

曾是巢許淺(증시소허천) 전에는 소부 허유의 은혜 적음 당연시하다

始知堯舜深(시지요순심) 비로소 요순의 은혜 깊은 줄 알게 되었네.

蒼生詎有物(창생거유물) 창생이야 어찌 가진 재물 있으랴!

黃屋如喬林(황옥여교림) 천자는 큰 나무 숲처럼 감싸주시어,

上德撫神運(상덕무신운) 거룩한 덕으로 천명 따라 어루만지니

沖和穆宸襟(충화목신금) 온화한 기운 천자의 가슴에 넉넉하다오.

雲雷康屯難(운뢰강둔난) 천둥 번개 같은 환란 겪고나 평강해지니

江海遂飛沈(강해수비침) 강해에 새와 물고기 맘껏 날고 헤엄치네.

天工寄人英(천공기인영) 나라 다스리는 큰일을 영재에게 맡기고

龍袞瞻君臨(용곤첨군림) 임금께서는 군림해 살펴보고 있거늘,

名器苟不假(명기구불가) 명기는 참으로 빌려주는 것 아니로되

保釐固其任(보리고기임) 보호하며 다스려 임무를 확실히 하시길.

素資貫方領(소자관방령) 그대는 맑은 자질에 유자의 옷 입으며

淸景照華簪(청경조화잠) 청신한 빛이 화려한 비녀에 비치는데,

慷慨念王室(강개념왕실) 강개한 심정 지닌 채 왕실을 걱정하고

從容獻官箴(종용헌관잠) 차분히 임금을 경계시킬 글을 올리네.

雲旗蔽三川(운기폐삼천) 드높은 깃발은 세 강물의 낙양 뒤덮고

畫角發龍吟(화각발용음) 뿔피리는 용의 울음소리 일으키는데,

晨揚天漢聲(신양천한성) 새벽에 위대한 당나라 위풍 드날리고

夕卷大河陰(석권대하음) 저녁이면 황하 남쪽 반군 쓸어내리라.

窮人業已寧(궁인업이녕) 궁한 백성들 생업에 이미 편안케 되고

逆虜遺之擒(역로유지금) 역적의 무리들 사로잡아 보내 주리니,

然後解金組(연후해금조) 그런 후에는 갑옷을 벗어 놓고서

拂衣東山岑(불의동산잠) 옷깃 떨치고 동산 봉우리로 돌아오리라.

給事黃門省(급사황문성) 문하성에서 봉직을 수행하고 있자니

秋光正沈沈(추광정침침) 가을빛은 정히도 짙어지고 있구나.

功名與身退(공명여신퇴) 공명을 이룰 뜻 몸과 함께 물러나고

老病隨年侵(노병수년침) 노쇠와 병약함 해를 좇아 침범하는데,

君子從相訪(군자종상방) 군자다운 그대 비록 찾아준다 하여도

重玄其可尋(중현기가심) 어찌 현묘한 이치를 탐구할 수 있으리?

* 공단(空端) : 불문(佛門)과 같은 의미임. 불교에서는 만법(萬法)을 모두 공(空)으로 여기며, 단(端)은 한쪽 끝, 한쪽 방면을 가리킴. * 하심(遐心) : 세상을 초탈하려는 마음을 가리킨다. * 소허(巢許) : 요임금 때의 은자인 소부(巢父)와 허유(許由). 《高士傳》에 의하면 허유는 요가 임금의 자리를 내주려 하자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귀를 씻었으며, 소부는 소에게 물을 먹이려다 그 얘기를 듣고 상류로 소를 끌고 가서 물을 먹였다고 전해짐. * 물(物) : 집안의 재물, 재화를 가리킴.

* 황옥(黃屋) : 황색 비단으로 덮개를 한 천자의 수레. 곧 천자를 가리킴. * 상덕(上德) : 지극히 훌륭하고 성대한 덕. * 신운(神運) : 천운(天運), 천명(天命)과 같다. * 충화(沖和) : 진기(眞氣), 원기(元氣)를 가리킴. 목(穆) : 두텁다는 뜻. * 신금(宸襟) : 임금의 흉금. 신(宸)은 본래 임금의 거처를 뜻하는 글자로, 임금을 가리킬 때 관용적으로 쓰인다. * 운뢰(雲雷) : 구름이 모여 비가 퍼붓고 천둥 번개가 침. 동란을 비유한 것임. * 준난(屯難) : 재난, 곤란의 뜻. * 천공(天工) : 국가대사를 가리킴. 본래 하늘의 직무와 책임을 의미하는데, 옛날에는 왕이 하늘을 대신해 나라를 다스린다는 관념이 있었음. * 용곤(龍袞) : 용 문양이 그려진 곤룡포로 천자의 복식을 가리킴. * 명기(名器) : 존비귀천의 신분 등급을 나타내는 관작과 칭호 및 거마와 의복의 제도. 이를 부여하는 것은 임금의 독점적인 권능으로 간주되었음. * 보리(保釐) : 보호하여 편히 살도록 다스린다는 뜻. * 소자(素資) : 맑고 순수한 자질. * 관(貫) : 착용한다는 뜻. *방령(方領) : 네모나게 옷깃을 만든 옷. 유자의 복식을 가리킴. * 청경(淸景) : 맑은 빛. 새벽빛을 가리킴. * 화잠(華簪) : 고관이 착용하는 화려한 비녀를 가리킴. * 관잠(官箴) : 관리가 임금을 경계시키기 위해 하는 말이나 글. * 운기(雲旗) : 구름에 닿을 듯 드높게 솟은 깃발. * 삼천(三川) : 낙양의 별칭. 이수(伊水), 낙수(洛水), 하수(河水)의 세 강물이 흘러 붙여진 이름. * 화각(畫角) : 군악기의 일종. 용을 그려 넣은 피리. * 천한성(天漢聲) : 天은 높고 크다는 뜻. 漢聲은 唐聲과 같음. 한나라를 끌어다 당나라에 비유한 것으로 당나라의 성세(聲勢), 위풍(威風)을 의미함. * 대하음(大河陰) : 대하는 황하를 가리킴. 음은 강의 남쪽으로, 여기서는 황하 이남에서 횡행하는 반란군을 가리킴. * 역로(逆虜) : 반역의 무리들. 사사명(史思明) 등을 가리킴. * 유(遺) : 준다는 뜻이다. * 금조(金組) : 금갑(金甲)과 같음. 가죽에다 금속을 이어 붙여서 만든 갑옷. * 동산(東山) : 은거하는 곳을 가리킴. * 급사(給事) : 급사중(給事中). 왕유는 이해 급사중으로 있었다. * 황문랑(黃門省) : 문하성을 가리킴. * 침침(沈沈) : 왕성한 모양. 무성한 모양. * 중현(重玄) :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는 뜻.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정묘하고 심오한 철리를 나타낸다. 여기서는 불도(佛道)를 비유한 것임. 기(其) : 豈, 難道와 같음. 어찌 ~할 수 있을까?

 

 

別弟縉後, 登靑龍寺望藍田山(별제진후, 등청룡사망남전산.) 아우 진과 헤어진 후 청룡사에 올라 남전산을 바라보며

 

진(縉) : 왕유의 동생. 700-781. 자(字)는 하경(夏卿).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해 형과 함께 명성이 있었다. 과거급제 후 시어사(侍御史), 병부원외랑(兵部員外郎)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안사(安史)의 난 때에 태원소윤(太原少尹)에 임명되어 이광필(李光弼)을 도와 태원을 지켜 자못 공적이 있었던 데다 지략을 지녀 여론의 추중하는 바 되었고, 형부시랑(刑部侍郎)을 지낸 이후 두 차례 재상에 임명되었다. * 청룡사(靑龍寺) : 장안 남문의 동쪽에 있던 사찰. * 남전산(藍田山) : 섬서성 서안시 직할현인 남전현의 남동쪽, 여산의 남쪽에 있는 산.

 

陌上新別離(맥상신별리) 길 위에서 이제 막 헤어졌거늘

蒼茫四郊晦(창망사교회) 아스라이 사방 교외 어두워지네.

登高不見君(등고불견군) 높이 올라도 자네 보이지 않고

故山復雲外(고산부운외) 옛 머물던 산도 다시 구름 저편에.

遠樹蔽行人(원수폐행인) 먼 나무는 길 가는 이를 가리고

長天隱秋塞(장천은추새) 아득한 하늘은 가을날 관새 숨겼네.

心悲宦游子(심비환유자) 슬퍼라, 외지에서 벼슬 사는 이여

何處飛征蓋(하처비정개) 수레는 어디 쯤 내달리고 있는가?

 

* 고산(故山) : 예전에 은거하던 남전현의 망천을 가리킴. * 환유자(宦游子) : 외지로 부임해 벼슬하는 이. * 정개(征蓋) : 정은 먼 길을 간다는 뜻. 개는 비와 햇볕, 먼지 따위를 피하기 위해 수레 위에 설치해 놓은 덮개. 곧 수레를 가리킴.

 

 

瓜園詩, 幷序(과원시, 병서) 과원시

 

維瓜園高齋, 俯視南山形勝. 二三時輩, 同賦是詩, 兼命詞英數公, 同用園字爲韻, 韻任多少. 時太子司議郎薛璩發此題, 遂同諸公云.(유과원고제, 부시남산형승. 이삼시배, 동부시시, 겸명사영수공, 동용원자위운, 운임다소. 시태자사의랑설거발차제, 수동제공운.)

 

나는 외밭의 높은 곳에 있는 서재에서 종남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굽어보며 지내었다. 그러다 두세 명의 명사(名士)와 함께 이 시를 짓고, 겸하여 시에 능한 여러 공들에게 동일히 ‘원(園)'자 운을 사용해 짓도록 하였다. 운자의 많고 적음은 뜻대로 하게 하였다. 그 때 태자사의랑(太子司議郎) 설거(薛璩)가 이 시제를 퍼뜨려, 종국에는 여러 공들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 과원(瓜園) : 오이나 참외를 심은 밭. 망천별장을 시주해 절로 삼은 후 별도로 종남산 부근에 마려한 곳이다. * 남산(南山) : 종남산을 가리킴. * 설거(薛璩) : 산서성 출신으로, 일찍이 호북성 강릉 지역을 유력하였다. 개원(開元) 19년 진사가 되어 영락현주부(永樂縣主簿)를 지냈으며, 천보(天寶) 6년(747) 이후 섭현령(涉縣令)과 사의랑(司議郞) 등을 역임하였다. 상서수부낭중(尙書水部郎中)으로 치사하고 종남산에 은거했다. 시인으로서 이름이 높았다.

余適欲鋤瓜(여적욕서과) 나 마침 외밭에 김매려고 하다가

倚鋤聽叩門(의서청고문) 괭이 든 채 문 두드리는 소리 들으니,

鳴騶導驄馬(명추도총마) 길 인도하는 이는 청총마를 이끌고

常從夾朱軒(상종협주헌) 시종은 귀인의 수레 양 옆에서 뫼시네.

窮巷正傳呼(궁항정전호) 외진 동네에 이제 막 소리쳐 부르거늘

故人儻相存(고인당상존) 친구들 기약도 없이 찾아와주어,

攜手追涼風(휴수추량풍) 서늘한 바람 따라 손을 잡아 이끌며

放心望乾坤(방심망건곤) 마음 활짝 펴고 하늘 땅 바라보노라.

藹藹帝王州(애애제왕주) 제왕의 도읍지는 성대하기도 하며

宮觀一何繁(궁관일하번) 궁성은 어찌 그리 번화하단 말인가?

林端出綺道(임단출기도) 수풀 위로 여러 갈래 길 드러났으며

殿頂搖華幡(전정요화번) 궁전 꼭대기 화려한 깃발 흔들리는데,

素懷在靑山(소회재청산) 평소 청산에 뜻을 두어 왔으니

若値白雲屯(약치백운둔) 마치 모여 있는 흰 구름과 같다오.

迴風城西雨(회풍성서우) 돌개바람 불어 성 서쪽 비가 내리고

返景原上村(반경원상촌) 지는 햇살은 들판 위 마을 비치는데,

前酌盈樽酒(전작영준주) 그득한 단지의 술을 앞에 따라주고

往往聞淸言(왕왕문청언) 왕왕 청담의 말씀을 듣기도 하네.

黃鸝囀深木(황려전심목) 꾀꼬리는 깊은 숲에서 지저귀며

朱槿照中園(주근조중원) 붉은 무궁화는 뜨락에 비쳐오거늘,

猶羨松下客(유선송하객) 솔숲에 은거하는 이 외려 부러워하며

石上聞淸猿(석상문청원) 바위 위에서 원숭이의 울음을 듣네.

 

 

* 명추(鳴騶) : 길잡이. 현달하고 존귀한 사람이 행차할 때 길을 터주며 인도하는 기졸(騎卒). * 총마(驄馬) : 청색과 백색의 얼룩무늬를 한 말. 때에 따라서는 어사를 가리키기도 하나 여기서는 현달한 사람이 탄 말을 가리킴. * 상종(常從) : 신변에 있으며 늘 시종하는 이를 가리킴. * 주헌(朱軒) : 공경의 지위에 있는 고관이 타는 수레. * 전호(傳呼) : 음성을 전하여 시종을 부른다는 뜻으로, 방문 대상에 대한 존경과 총애의 뜻을 담고 있다. * 당(儻) : 기약 없이 문득 찾아온다는 뜻이다. * 존(存) : 방문한다는 뜻이다. * 방심(放心) : 마음을 열어 펼치다. * 애애(藹藹) : 성대한 모양. * 제왕주(帝王州): 제왕이 거처하는 곳이란 뜻. 장안을 가리킴. * 임단(林端)은 ‘숲의 위’라는 뜻. 기도(綺道)에서 綺는 ‘기울어지다(攲)’의 뜻으로, 종횡으로 교차하는 도로를 가리킴. 이 구절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멀리 숲 위로 길이 보인다는 의미임. * 회풍(迴風) : 돌개바람. * 반경(返景) : 되비치는 햇빛. 해가 서쪽으로 질 때에 그 빛이 동쪽으로 반사되어 비치는 것. * 청언(淸言) : 고아한 담론. 청담과 같음. * 황려(黃鸝) : 꾀꼬리. * 주근(朱槿) : 붉은 꽃이 피는 무궁화의 일종. 별칭은 불상화(佛桑花). * 송하객(松下客) : 은자를 비유함. 소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 상록수여서 지조가 고결한 현자와 은사를 비유함.

 

 

送楊長史赴果州(송양장사부과주) 과주로 부임하는 양장사를 보내며

 

* 양장사(楊長史) : 양제(楊濟)로 여겨짐. 후에 대리시소경(大理寺少卿) 겸 어사중승(御史中丞)을 역임하였음. 장사는 관직명. 上州에는 刺史, 別駕 밑에 1명을 두었으며 종5품. 中州에는 1인을 두었으며 정6품이다. * 과주(果州) : 지금의 사천성 남충현(南充縣) 북쪽에 치소가 있었음.

 

褒斜不容幰(포사불용헌) 수레도 못 지날 포사의 산길

之子去何之(지자거하지) 이 사람 떠나가 어디로 가나?

鳥道一千里(조도일천리) 새나 날아다닐 천리 길이요

猿啼十二時(원제십이시) 원숭이 종일토록 울어댄다네.

官橋祭酒客(관교제주객) 관교 곁에선 제주가 떠오를 테고

山木女郎祠(산목여랑사) 산림 속에선 여랑의 사당 보겠지.

別後同明月(별후동명월) 이별 후에도 밝은 달 함께 하리나

君應聽子規(군응청자규) 그대 응당 자규 울음 듣고 있겠지.

 

* 포사(褒斜) : 섬서성 종남산을 지나는 험한 산길. * 헌(幰) : 헌거(幰車) : 휘장을 친 수레. 조도(鳥道) : 높고 위태로운 산길을 가리킴. * 관교(官橋) : 관에서 관리하는 대로와 연결된 교량. 여기서는 그 곁에 세워진 여사(旅舍)를 가리킴. 사천성에서 발흥한 오두미교(五斗米敎)의 교주 장로(張魯)는 길가에 의사(義舍)라는 숙소를 짓고 여행객에게 음식을 제공하였다. * 제주객(祭酒客) : 제주와 같음. 객은 사람을 가리키는 접미사. 오두미도는 처음 도를 배운 자를 귀졸(鬼卒)이라 부르고 나중에는 제주라고 불렀는데, 도사인 그들이 숙소에서 여행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여행의 안전을 비는 벽사기복의 의식을 행하였다. * 여랑사(女郎祠) : 사당 이름. 여랑은 후한 말기 도교의 일파인 오두미교 교주 장로(張魯)의 딸. 섬서성 포성(褒城) 서남쪽 여랑산에 그 묘와 사당이 있었음. * 자규(子規) : 불여귀, 두견이라고도 함. 봄날 밤에 애처롭게 울며, 촉제(蜀帝) 두우(杜宇)의 넋이 변해 두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음. 촉땅이 양장사가 부임하는 사천성 지역이기에 특별히 언급한 것임.

 

 

慕容承携素饌見過(모용승휴소찬견과) 모용승이 채소를 가지고 찾아주어

 

* 모용승(慕容承) : 미상의 인물. * 소찬(素饌) :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야채를 가리킴. 왕유는 불교에 귀의한 이래 육식을 하지 않았음.

 

紗帽烏皮几(사모오피궤) 사모 쓰고 오피궤에 기댄 채

閑居懶賦詩(한거나부시) 한적히 보내느라 시 짓기도 게을러.

門看五柳識(문간오류식) 문을 보니 버들이 다섯인 줄 알겠고

年算六身知(연산육신지) 나이 세보니 해(亥)년생인 줄 알겠네.

靈壽君王賜(영수군왕사) 지팡이는 임금께서 내려주었고

雕胡弟子炊(조호제자취) 고미로는 하인이 밥을 해주네.

空勞酒食饌(공로주식찬) 괜히 술과 반찬에 마음을 쓰나

持底解人頤(지저해인이) 무얼 가지고 웃음 지어보리오?

 

* 오피궤(烏皮几 ) : 좌석 옆에 두는 검은 색의 자그마한 탁자. 피로할 때 기대는 용도로 쓰거나 물건을 올려놓기도 한다. * 오류(五柳) : 진(晋)의 도연명(陶淵明)이 집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들이 있어 오류선생으로 자호하였다. 왕유의 망천 별장 문 앞에도 또한 버드나무가 있었다. * 육신(六身) : '亥'자를 의미함. 옛날의 亥자는 그 형상이 위에는 '二'로 되어 있고 아래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은 3개의 '丁'자가 나란한 모양으로 6획이어서 '二首六身'이라 불렸다. 여기서는 왕유 자신이 亥年에 태어난 것을 밝힌 것이다. * 영수(靈壽) : 지팡이를 가리킴. 본래는 나무 이름으로, 대나무와 비슷하고 마디가 있다. * 조호(雕胡) : 줄풀의 열매인 고미(菰米)를 가리킴. 제자(弟子) : 여기서는 집에서 부른 하인을 가리킴. * 지저(持底) : 무엇을 가지고서. 底는 何와 같은 뜻이다. * 해인이(解人頤) : 남의 턱을 열다. 웃게 만든다는 뜻.

 

 

酬慕容十一(수모용십일) 모용십일에게 수답함

 

* 모용십일(慕容十一) : 앞의 〈慕容承携素饌見過〉의 모요승(慕容承)으로 추정됨. 十一은 그의 배항(排行).

 

行行西陌返(행행서맥반) 길을 가고 가 서쪽 길로 돌아서

駐幰問車公(주헌문차공) 수레 멈추고 차공에게 문안하네.

挾轂雙官騎(협곡쌍관기) 두 시종은 수레 끼고 호위하며

應門五尺僮(응문오척동) 어린 종은 대문에서 응대를 하네.

老年如塞北(노년여새북) 노년에 북쪽 변새로 나아가거늘

强起離牆東(강기이장동) 힘내어 은거하던 곳 떠나간다네.

爲報壺邱子(위보호구자) 호구자에게 알려주시오

來人道姓蒙(래인도성몽) 찾아온 이는 성이 몽이라 한다고.

 

* 헌(幰) : 幰車. 포장을 친 수레. * 차공(車公) : 진(晉)의 차윤(車胤)을 가리킴. 학문을 좋아했으나 가난해 반딧불로 책을 읽은 고사가 전함. 환온(桓溫)의 부름을 받고 출사해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회계왕세자(会稽王世子)인 사마원현(司馬元顯)이 교만 방탕하여 그의 부친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에게 고소하였다. 또 천자에 아뢰려 했으나 일이 누설되어 사마원현의 핍박을 받고 자살하였다. 평소 모임에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그가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다들 “차공이 없어 재미가 없다”고 하였음. 여기서는 모용십일을 그에 비긴 것. * 곡(轂) : 바퀴통. 바퀴살을 고정시키는 바퀴의 정중앙 부위. 여기서는 수레를 가리킴. * 관기(官騎) : 왕가의 기사. 시종하는 자를 가리킴. * 응문(應門) : 문을 두드려 부르면 응답하는 것. 문지기기를 가리키기도 함. * 오척동(五尺僮) : 키가 다섯 자인 어린 종. * 여(如) : ‘가다’라는 뜻의 동사로 쓰였음. * 강기(强起) : 힘을 내어 벼슬함을 가리킴. * 장동(牆東) : 원래 '담장의 동쪽'을 가리키나 은거지를 뜻하는 말이 되었음. 동한의 왕군공(王君公)이 난리를 만나 소 거간꾼이 되어 은둔하자 사람들이 그를󰡐피세장동왕군공(避世牆東王君公)󰡑이라 불렀음. * 호구자(壺邱子) : 호구자림(壺邱子林). 호구는 성(姓). 전국시대 정(鄭) 사람으로 도덕이 높아 열어구(列御寇)가 스승으로 섬겼다. 여기서는 모용십일을 그에 비유한 것임. * 성몽(姓蒙) : 장자를 가리킴. 이름은 주(周). 본래 성이 몽(蒙)이 아니지만, 몽땅에서 칠원리(漆園吏)를 지내 몽리(蒙吏), 몽장자(蒙莊子)로도 불린다. 몽은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동북쪽 지역이다. 여기서는 작자 자신을 비유한 것임.

 

 

飯覆釜山僧(반복부산승) 복부산 승려에게 음식을 대접하다.

 

* 복부산(覆釜山) : 이 시를 고부낭중분사동도(庫部郎中分司東都)로 있을 때 지어, 하남성 영보현(靈寶縣)에 있는 복부산으로 추정됨.

 

晩知淸淨理(만지청정리) 만년에 청정의 이치 깨달아

日與人羣疎(일여인군소) 날로 사람들과 소원해지네.

將候遠山僧(장후원산승) 장차 먼 산에서 오실 스님 기다리면서

先期拂敝廬(선기불폐려) 기약한 날 앞서 낡은 초가 청소하였네.

果從雲峯裏(과종운봉리) 과연 구름 덮인 봉우리 속에서

顧我蓬蒿居(고아봉호거) 다북쑥 우거진 내 집 찾아주시니,

藉艸飯松屑(적초반송설) 풀 깔고 앉아 송홧가루 먹으며

焚香看道書(분향간도서) 분향을 하고서 불경을 보네.

燃燈晝欲盡(연등주욕진) 낮이 다해갈 무렵 등불을 켜고

鳴磬夜方初(명경야방초) 초야 다가와 경쇠를 울리는데,

已悟寂爲樂(이오적위락) 적멸이 즐거움인 줄 깨닫고나니

此生閑有餘(차생한유여) 나의 생애 한가로움 넘쳐나누나.

思歸何必深(사귀하필심) 벼슬 그만둘 생각 하필 깊어야 하나?

身世猶空虛(신세유공허) 이 몸과 이 세상 공허와도 같은데.

 

* 청정(淸淨) : 악행으로 생겨난 허물이나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난 깨끗한 상태. 자성청정(自性淸淨), 이구청정(離垢淸淨)의 두 종류가 있음. * 봉호(蓬蒿) : 다북쑥. 쑥대 우거진 황야의 외딴 곳을 가리킴. * 송설(松屑) : 송화(松花) 가루. 혹은 솔방울, 잣을 가리키기도 함. 선신(仙食)으로 알려져 있음. * 도서(道書) : 불경을 가리킴. 야방초(夜方初) : 밤이 바아흐로 초경(初更)이 되다. 하룻밤을 2시간 씩 묶어 다섯 시간대로 나눴을 때, 7시에서 9시 사이의 첫 두 시간을 가리킴. 이를 초경(初更) 혹은 초야(初夜)라고 부름. * 적(寂) : 적멸(寂滅). 열반(涅槃)과 같음. 번뇌를 끊어 인과(因果)가 없어짐으로써 다시는 미혹한 생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적정(寂靜)한 경계. * 사귀(思歸) :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할 생각을 가리킴.

 

 

歎白髮(탄백발) 백발을 한탄함

 

宿昔朱顔成暮齒(숙석주안성모치) 젊었던 모습 금방 늘그막에 이르고

須臾白髮變垂髫(수유백발변수초) 어린아이 홀연 백발로 변하고 마네.

一生幾許傷心事(일생기허상심사) 살면서 상심할 일 얼마나 될까?

不向空門何處銷(불향공문하처소) 불문에 안 들면 어디서 시름 없애리?

 

* 모치(暮齒) : 늙은 나이. 즉 만년을 가리킴. * 백발변수초(白髮變垂髫) : ‘垂髫變白髮’의 도치. 수초는 어린 아이의 드리워진 머리카락. 혹은 어린 아이를 가리키기도 함. 옛날에 어린 아이는 머리카락을 묶지 않아 이마 앞으로 드리워졌기에 생겨난 말. * 공문(空門) : 불교를 가리킴. 불교는 일체의 사물을 참된 실체가 없는 허망한 것으로 간주하여 ‘제법개공(諸法皆空)’을 주장하며, 공(空)을 깨달음이 도에 드는 문이라 한다.

 

 

和陳監四郎秋雨中思從弟據(화진감사랑추우중사종제거) 진감사랑의 〈가을 비 속에 종제 진거를 생각하며〉시에 화답함

 

* 진감사랑(陳監四郎) : 좌상(左相), 태자태보(太子太傅)를 지낸 진희열(陳希烈)의 손자, 소부소감(少府少監)을 지낸 진예(陳汭)의 아들로 추정되나 미상. 감(監)은 관명. 비서성을 비롯 각 성(省)에 각기 종2품인 감 1인이 있었다. 관서에 필요한 물품 조달에 관한 업무를 감독하였다.

 

嫋嫋秋風動(뇨뇨추풍동) 산들산들 가을바람 불어오며

淒淒烟雨繁(처처연우번) 서늘하니 안개 비 자욱한데,

聲連鳷鵲觀(성련지작관) 지작관에 소리 연이어 들려오고

色暗鳳凰原(색암봉황원) 봉황원에 가을빛은 어둑하여라.

細柳疎高閣(세류소고각) 가는 버들가지 높다란 누각에 성기고

輕槐落洞門(경괴낙동문) 가벼운 홰나무 잎 동문 사이 지는데,

九衢行欲斷(구가행욕단) 대로에는 길 가는 이 끊어지려 하고

萬井寂無喧(만정적무훤) 온 집마다 고요해 시끄러움 없구나.

忽有愁霖唱(홀유수림창) 그대 홀연 〈수림〉의 노래 부르고

更陳多露言(갱진다로언) 또한 이슬이 많다는 말 진술하거늘,

平原思令弟(평원사영제) 육기는 좋은 아우 육운을 그리워했고

康樂謝賢昆(강락사현곤) 사령운은 어진 형님 사첨께 감사드렸네.

逸興方三接(일흥방삼접) 호방한 흥치로 몇 번이고 만나봤으며

衰顔强七奔(쇠안강칠분) 노쇠한 몸으로 힘써 나랏일 하였건만,

相如今老病(상여금노병) 사마상여 같은 그대 이제 늙고 병들어

歸守茂陵園(귀수무릉원) 돌아가 무릉의 동산을 지키고 있구려.

 

* 뇨뇨(嫋嫋) : 거세진 않은 바람이 길게 이어져 불어오는 모양. 혹은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모양. * 처처(淒淒) : 서늘하고 차가운 기운이 번지는 모양. * 지작관(鳷鵲觀) : 한무제 때 운양(雲陽)의 감천궁(甘泉宮) 바깥쪽에 지은 누관(樓觀). 지금 섬서성 순화현(淳化縣) 서북쪽에 있었음. 한나라 때 사마상여가 〈상림부(上林賦)〉에서 이를 노래한 바 있음. * 봉황원(鳳凰原) : 섬서성 임동현(臨潼縣) 동북쪽 여산(驪山)의 기슭을 가리킴. 후한 때에 봉황이 모여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 동문(洞門) : 궁전이나 저택이 깊숙하여 겹겹으로 문이 마주해 서있음을 가리킴. * 구가(九衢) : 사방으로 길이 나있는 대로를 가리킴. * 만정(萬井) : 수 많은 촌락의 집들을 가리킴. * 수림(愁霖) : 남조시대 사령운(謝靈運)이 종형 사첨(謝瞻)에게 지어준 시. 진감이 종제를 생각하며 지은 〈추우중사종제거〉시를 여기에 빗댄 것임. * 다로(多露) : 《詩․召南․行露》에 “어찌 새벽이나 밤에는 다니지 않나? 길에 이슬이 많을까 걱정돼서 라네.”(豈不夙夜, 謂行多露.)라는 구절이 있음. 이 구절은 진감사랑의 시에 종제가 처세에 조심하길 바란다는 권유의 말이 있음을 밝힌 것이다. * 평원(平原) : 평원내사(平原內史)를 지낸 진(晋)의 문인 육기(陸機)를 가리킴. * 영제(令弟) : 동생에 대한 미칭. ‘令’은 착하다, 아름답다, 뛰어나다의 뜻이 있음. 육기의 동생 육운(陸雲)은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형과 함께 명성이 나란하여 ‘이륙(二陸)’이라 불렸다. * 강락(康樂) : 선대의 봉작을 이어 받아 강락공에 봉해진 사령운을 가리킴. * 현곤(賢昆) : 형에 대한 미칭. 사령운의 종형 사첨을 가리킴. * 일흥(逸興) : 호매한 흥치. * 삼접(三接) : 주일삼접(晝日三接)의 줄임말. 하루에 세 번을 만나 봄. 임금의 총애가 깊거나 교유에 정이 깊음을 비유함. *칠분(七奔) : 일세칠분명(一歲七奔命)의 줄임말. 왕명을 받들어 한 해에 일곱 차례나 분주하게 나라 안을 돌아다님. 나랏일로 바쁨을 비유함. * 상여(相如) :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킴. 진감사랑을 그에 비유한 것이다. * 무릉(茂陵) : 한무제의 왕릉. 섬서성 흥평현(興平縣) 동북쪽에 있음. 사마상여가 소갈병이 있어 무릉 근처에서 요양하며 한가롭게 보내었다.

 

 

冬晩對雪, 憶胡居士家(동만대설, 억호거사가) 겨울 밤 눈을 바라보다 호거사의 집을 떠올리다

 

* 호거사(胡居士) : 미상. 거사는 출가하지 않은 채 집에 있으며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

 

寒更傳曉箭(한경전효전) 추운 밤 북소리는 새벽 알리고

淸鏡覽衰顔(청경남쇠안) 맑은 거울 속 쇠한 얼굴 보노라.

隔牖風驚竹(격유풍경죽) 창 너머 바람에 대숲 흔들리는데

開門雪滿山(개문설만산) 문 여니 온 산 가득 눈이로구나.

灑空深巷靜(쇄공심항정) 허공에 날려 깊은 골목 고요하고

積素廣庭閑(적소광정한) 하얗게 쌓여 넓은 뜨락 한적해라.

借問袁安舍(차문원안사) 묻나니 가난한 원안의 집은

翛然尙閉關(소연상폐관) 여전히 문 닫은 채 초연하겠지.

 

* 한경(寒更) : 추운 밤에 들리는 경고(更鼓) 소리를 가리킴. 경고는 시각을 알리기 위해 치는 북. * 효전(曉箭) : 새벽 시간을 가리킴. 전(箭)은 물시계에 설치되어 시각을 표시하는 화살 모양의 부속품. * 원안(袁安) : 후한의 고사(高士). 낙양에 폭설이 내렸을 때 남들의 어려운 사정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은 눈에 파묻힌 집안에서 춥고 굶주린 채 남아 있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後漢書·袁安傳》* 소연(翛然) : 무엇에 얽매이지 않은 초탈한 모습.

 

 

胡居士臥病, 遺米因贈(호거사와병, 유미인증) 호거사가 병으로 누웠기에 쌀을 보내며 시를 지어준다

 

了觀四大因(료관사대인) 사대 인소(因素)를 명료히 살펴보건만

根性何所有(근성하소유) 사람의 근성(根性)에는 무엇이 있는가?

妄計苟不生(망계구불생) 망녕된 생각 진실로 생겨나지 않으면

是身孰休咎(시신숙휴구) 이 몸에 무슨 길흉화복이 찾아들리오?

色聲何謂客(색성하위객) 색(色)과 성(聲)을 어째서 객(客)이라 일컬으며

陰界復誰守(음계부수수) 오음(五陰)과 십팔계(十八界)는 또 누가 지키랴?

徒言蓮華目(도언연화목) 다만 연꽃 같은 부처의 눈을 말할 것이지

豈惡楊枝肘(기오양지주) 어찌 혹이 난 팔꿈치를 싫다고 하리.

旣飽香積飯(기포향적반) 그대는 향적여래(積飯如來)의 밥에 이미 배부르니

不醉聲聞酒(불취성문주) 성문(聲聞)의 술을 마시며 취하지는 않으리.

有無斷常見(유무단상견) 유견(有見), 무견(無見), 단견(斷見), 상견(常見)을 가지고

生滅幻夢受(생멸환몽수) 생성과 소멸을 헛된 꿈속에서 받아들이니,

卽病卽實相(즉병즉실상) 병에 다름 아니며 실상(實相)과 다르지 않으나

趨空定狂走(추공정광주) 공(空)만 좇으면 분명 생각이 미친 듯 내달리리.

無有一法眞(무유일법진) 진실한 하나의 법도 있지 않으며

無有一法垢(무유일법구) 더러운 하나의 법도 있지 않거늘,

居士素通達(거사소통달) 거사는 평소 이런 이치에 통달하여

隨宜善抖擻(수의선두수) 인연에 맡기며 수행을 잘도 하였네.

床上無氈臥(상상무전와) 침상에는 담요도 없이 누워 있으며

鎘中有粥否(역중유죽부) 솥 안에는 죽마저 있지 않을 터인데,

齋時不乞食(재시불걸식) 재식할 때에도 걸식을 아니하고

定應空漱口(정응공수구) 괜히 입 안을 헹구기만 하였으리.

聊持數斗米(료지수두미) 애오라지 몇 말 쌀이나마 가져다가

且救浮生取(차구부생취) 덧없는 삶에 우선 도움을 주고자 하네.

* 호거사(胡居士) : 미상의 인물. 거사는 집에 있으며 도를 닦는 사람. * 료관(了觀) : 투철하게 보고 깨달음. * 사대(四大) : 사물을 이루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사대 원소. * 인(因) : 인소(因素). 사물을 결정하는 원인과 조건 내지 사물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성분. * 근성(根性) : 불교어. 인성의 근본에는 선과 악이 있어 이로부터 업이 생겨나기에 근성이라 한다. * 망계(妄計) : 허망한 계획. 망념과 같음. * 휴구(休咎) : 선악, 길흉, 화복. * 객(客) : 불교에서는 눈, 귀. 코, 혀, 몸, 뜻을 육근(六根)이라 하며 그 작용대상인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을 육경(六境)이라 한다. 그리고 육근을 주(主), 육경을 객(客)이라 칭한다. * 음계(陰界) : 불교어. 오음(五陰)과 십팔계(十八界). 오음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 사람에게 쌓인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5가지의 현상. 십팔계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가리킨다. 육근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 * 연화목(蓮華目) : 연꽃과 같은 눈. 부처 혹은 불법에 대한 비유적인 호칭이다. * 양지주(楊枝肘) : 楊은 柳와 같으며 柳는 瘤의 뜻으로 쓰였다. 본래는 팔꿈치에 혹이 생겨난다는 뜻이나, 질병을 앓는다는 의미로 쓰임. 《莊子․至樂》. * 향적반(香積飯) : 대승(大乘)을 밥에 비유한 것이다. 향적반은 유마힐(維摩詰)이 향적여래(香積如來)에게 얻어 대중에게 공양한 밥으로, 소량이지만 모든 사람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에 이르게 함을 비유한다. * 성문주(聲聞酒) : 소승(小乘)을 술에 비유한 것이다. 성문은 부처의 성교(聲敎)를 듣고 사체(四諦)의 이치를 깨우쳐 개인의 자아 해탈에 이르는 것. 이 구절은 호거사가 이미 대승(大乘)의 경지에 있어 소승(小乘)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 * 유무단상견(有無斷常見) : 유견(有見), 무견(無見), 단견(斷見), 상견(常見)의 올바르지 못한 견해. 사물을 판단함에 있어 실제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유견, 상존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상견이라 한다. 실제 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무견, 사라진 것에 집착하는 것을 단견이라 한다. * 생멸환몽수(生滅幻夢受) : 인연이 있고 없고에 따른 생과 멸은 몽환 속에 주어지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 병(病) : 질병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사대 인소가 조화롭지 못해 생겨난 현상으로 이해되었다. * 실상(實相) : 실상은 만물의 참된 본성으로 본질과도 같다. 불성(佛性), 법성(法性), 진여(眞如)와 같은 의미이다. 병은 본래 현상이지만 현상은 본질의 표현이기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것도 실상의 표현이라는 의미이다. * 공(空) : 만물은 인연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므로, 규정성을 지닌 진실한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 법(法) : 물질과 정신의 온갖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제법(諸法)이 다 공(空)이라 생각하기에 모든 현상은 허망한 것이며 변하지 않는 진실한 본성을 가진 존재는 없다고 본다. * 구(垢) :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 중생은 모두 불성(佛性)을 지녀 본원적으로 청정한데 이를 더럽힌다는 뜻이다. * 수의(隨宜) : 적합한 바를 따르다. 인연에 따라 행동하다. * 두수(抖擻) : 기운을 내다, 분발하다, 진작(振作)하다의 뜻. 두타(頭陀)와 같은 의미로도 쓰여, 힘써 집착과 번뇌를 떨쳐버리고 심신을 수련하는 것을 이름. * 전(氈) : 짐승의 털로 색을 맞추고 무늬를 놓아 두툼하게 짠 부드러운 요. 융단. * 격(鎘) : 다리가 굽은 모양을 한 취사용 솥. * 제시(齋時) : 재식(齋食)하는 때. 승려가 음식을 먹는 새벽과 한낮의 시각. 원래 정오가 지난 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게 되어 있다. * 정응(定應) : 부사. 반드시, 응당. * 수구(漱口) : 식후에 양치질을 하고 입안을 헹구는 것. * 부생(浮生) : 정처없이 떠도는 것과도 같은 인생이란 뜻이다. “그 삶이 마치 떠있는 것과 같다.(其生若浮)” 《莊子·刻意》* 취(取) : 본래 욕망에 대한 집착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생활에 필요한 사물을 의미한다.

 

 

與胡居士皆病, 寄此詩, 兼示學人. 二首.(여호거사개병, 기차시, 겸시학인. 2수) 호거사와 더불어 함께 병이 들었기에 이 시를 보내고, 겸하여 학인들에게도 보이다.

 

호거사(胡居士) : 미상의 인물. 거사는 집에 있으며 도를 닦는 사람. 학인(學人) : 여기서는 불도를 배우는 이를 가리킴.

 

一興微塵念(일흥미진념) 작은 티끌이 몸이 됐단 생각 한번 생기게 되면

橫有朝露身(횡유조로신) 아침 이슬 같은 몸이라고 그릇되게 여기게 되네.

如是覩陰界(여시도음계) 이와 같이 오음(五陰)과 십팔계(十八界) 살펴본다면

何方置我人(하방치아인) 어디에다 아(我)와 인(人)을 둘 수 있으랴?

礙有固爲主(애유고위주) 유(有)에 집착되면 고집하여 주(主)로 삼게 되며

趣空寧舍賓(취공녕사빈) 공(空)을 향할지라도 어찌 빈(賓)이 버려지게 되나?

洗心詎懸解(세심거현해) 공(空)과 유(有)를 모르고 마음만 닦으면 어찌 해탈하리?

悟道正迷津(오도정미진) 불도를 깨우침에 정히 나아갈 방도를 잃음이라네.

因愛果生病(인애과생병) 애착 때문에 과연 병은 생기는 것이며

從貪始覺貧(종탐시각빈) 탐욕을 말미암아 비로소 가난을 느끼게 되네.

色聲非彼妄(색성비피망) 색성(色聲) 같은 육경(六境), 그게 미망케함 아니오

浮幻卽吾眞(부환즉오진) 본래가 허환(虛幻)되며 우리도 참으로 그러하다네.

四達竟何遣(사달경하견) 네 가지 소중한 것도 끝내는 어디에 쓰리!

萬殊安可塵(만수안가진) 세상 만물이 어찌 마음을 더럽힐 수 있으리!

胡生但高枕(호생단고침) 호거사는 다만 높이 베개한 채 누워 보내니

寂寞與誰鄰(적막여수린) 적막한 가운데 누구를 가까이 할 수 있으리?

戰勝不謀食(전승불모식) 마음에 이겨내 먹는 것 따위 도모하지 않으며

理齊甘負薪(이제감부신) 본성을 동등히 여겨 땔감 짊어짐도 달가워하나,

子若未始異(자약미시이) 그대 만약 이런저런 차이 분별하지 못한다면

詎論疎與親(거론소여친) 어찌 친근과 소원을 따지고 있을 수 있겠는가?

 

* 미진(微塵) : 지극히 작은 물질을 가리킴. 불교에서는 몸이 극히 미소한 티끌로 이뤄졌다고 여김. * 횡(橫) : 착오나 과실로 인해 그릇되었다는 뜻이다. * 음계(陰界) : 오음(五陰)과 십팔계(十八界). 오음은 인연에 따라 생겨나 사람에게 쌓인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5가지의 현상. 십팔계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가리킨다. 십팔계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을 가리킨다. 육근은 안근(眼根), 이근(耳根), 비근(鼻根), 설근(舌根), 신근(身根), 의근(意根). 육경과 육식은 이에 준한다. * 아인(我人) : 나와 타인. 실재하는 양 그릇되이 집착하는 관념적 존재로서의 나와 그런 관념을 바탕으로 대상화된 남을 가리킴. * 애유(礙有) : 유(有)에 가로 막혀 집착함. 집착유(執着有)라고도 함. 有는 無 혹은 空의 상대어로 가유(假有), 실유(實有), 묘유(妙有) 등의 구별이 있다. 불교적 인식론에 의하면, 사물은 實有가 아니라 假有로서,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화합(和合)에 의하여 현실로 나타날 뿐이다. * 고위주(固爲主) : 有는 원래 假有이기 때문에 主가 될 수 없으나 사람들은 이를 고집하여 주로 삼는다는 뜻이다. * 취공(趣空) : 空을 향하여 감. 空은 인연에 의해 생겨나며, 실체가 없기에 공이라고 함. * 영사빈(寧舍賓) : 賓은 有를 가리킨다. 空을 따르게 되면 有는 객체의 자리에 놓이기에 賓이라 한 것이며, 공이 虛無는 아니기 때문에 有를 완전히 버릴 수도 없다는 뜻이다. 舍는 捨와 통해 쓴 것임. * 세심거현해(洗心詎懸解) : ‘세심’은 더럽혀진 마음을 닦음. ‘현해’는 묶여 있는 상태에서 풀려남. 해탈 혹은 대오각성을 비유한 것임. 이 구절에 담긴 의미는, 마음만 닦고 空과 有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해탈에 이를 수 없다는 뜻이다. * 오도정미진(悟道正迷津) : ‘오도’는 불도를 깨달음. ‘미진’은 나루를 찾지 못하고 헤맨다는 뜻으로 미계(迷界)과 비슷한 의미임.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3계와 천도(天道), 인도(人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 지옥도(地獄道)의 6도에서 생사와 윤회의 과정에 놓임을 가리킴. 이 구절은 空과 有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부처를 배움이 미망한 경계에 있다는 뜻. * 색성(色聲) : 육경(六境)을 의미한다. 육경은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 미망에 빠지는 것은 육경(六境)이나 육근(六根) 자체 때문이 아니라 망녕된 마음이 생겨나서 그렇다는 뜻이다. * 부환(浮幻) : 허망하며 실질이 없는 것. 사물은 본래 허망하고 실질이 없으며 우리들 또한 그러하다는 점은 진실이라는 뜻이다. 사달(四達) : 물, 소금, 그릇, 말. 세수할 때는 물이 중하고, 밥 먹을 대는 소금이 중하고, 마실 때에는 그릇이 중하고, 외출할 때는 말이 중하다는 뜻이다. 사실(四實)이라고도 함. * 견(遣) : 시키다, 부리다, 써먹다. * 만수(萬殊) : 만사, 만물과 같은 뜻. 마음을 맑게 가지고 욕심이 적으면 세상 만물이 마음을 더럽히지 못한다는 뜻이다. * 고침(高枕) : 높이 베개를 베고 누웠다는 뜻으로 근심 없이 편히 보낸다는 뜻. * 전승(戰勝) : 하나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극복함을 비유함. * 불모식(不謀食) : 명예와 지위, 이익 따위를 도모하지 않는다는 뜻. 《論語․衛靈公》“군자는 도를 도모하지 먹기를 도모하지 않는다(君子謀道, 不謀食.)” * 이제(理齊) : 이(理)가 모두 똑 같다는 뜻. 불교에서 말하는 理는 법성, 불성을 가리키며 사물의 본체 내지 본성을 의미함. 중생은 저마다 불성을 지니고 있지만 더럽혀진 상태여서, 그 더러움을 닦아내면 본성은 모두 차이가 없고 동등하다는 관점이다. 그러므로 신분에 따른 생활상의 차이는 불교의 관점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이해된다. * 부신(負薪) : 뗄감을 해서 짊어진다는 뜻으로 청빈하게 살거나 농사에 종사함을 비유함. * 미시이(未始異) :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아직 분별하지 못한다는 뜻. 미시(未始)는 미상(未嘗)과 같은 뜻.

 

 

2

浮空徒漫漫(부공도만만) 공(空)에 떠 있게 되면 다만 끝이 없으며

汎有定悠悠(범유정유유) 유(有)에 떠 있게 되면 필시 멀기만 한데,

無乘及乘者(무승급승자) 탈 것도 없고 타는 이도 없는 것이

所謂智人舟(소위지인주)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의 배인 것이라.

詎舍貧病域(거사빈병역) 가난과 질병 속에서 편히 여겨 떠나지 않고

不疲生死流(불피생사류) 삶과 죽음의 흐름에 순응하여 괴롭지 않다면,

無煩君喩馬(무번군유마) 그대 번거롭게 말로써 비유할 것도 없으니

任以我爲牛(임이아위우) 나를 소라 해도 그냥 놔두고 상관하지 않으리.

植福祠迦葉(식복사가섭) 선행을 베풀던 가섭에게 제를 올리면서

求仁笑孔丘(구인소공구) 인의를 추구하던 공자에게는 조소하는데,

何津不鼓棹(하진불고도) 어느 물길인들 힘들게 노 젓지 않을 것이며

何路不摧輈(하로불최주) 어떤 길이라고 끌채가 부셔지지 아니 하리!

念此聞思者(염차문사자) 이렇게 수행하는 이들 생각해 보노라니

胡爲多阻修(호위다조수) 어찌하여 몹시도 길은 험하고 멀기만 한가!

空虛花聚散(공허화취산) 마치 허공의 꽃이 모였다가는 흩어지며

煩惱樹稀稠(번뇌수희조) 번뇌의 나무 성겼다가 빽빽이 자라나는 듯.

滅想成無記(멸상성무기) 아무 생각 없게 되면 분별할 줄 모르고

生心坐有求(생심좌유구) 망녕된 생각 생겨나면 해탈을 갈구하니,

降吳復歸蜀(항오부귀촉) 오에 항복할 수도 또 촉에 돌아갈 수도 없어

不到莫相尤(부도막상우) 피안에 도달하지 못해도 탓할 수가 없으리.

 

* 공(空) : 불교에서는 일체의 사물이 모두 空과 有의 두 가지 相을 지닌 것으로 여긴다. 사물은 모두 인연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으로 自性이 없고 진실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性이 空하다고 한다. 사물은 空이지만 그렇다고 無는 아니며 허깨비처럼 존재하는 假有이다. 空에 집착하면 공은 虛無가 되고, 有에 집착하면 유는 實有가 된다. * 만만(漫漫) : 아득하니 끝없는 모양. * 승(乘) : 교법(敎法)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교법의 수행을 배를 타고 피안(彼岸)의 불지(佛地)에 도달하는 것에 비유함. 교법에는 일반적으로 삼승(三乘)이 있다. 첫째는 성문승(聲聞乘)으로 사체(四諦)의 교법을 수행하여 아라한(阿羅漢)이 된다. 둘째는 연각승(緣覺乘)으로, 12인연의 교법을 수행해 벽지불(辟支佛)이 된다. 셋째는 보살승(菩薩乘)으로 육도(六度)의 교법을 수행해 부처가 되는 것이다. 또한 《능가경》게송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제천 및 범중승(諸天及梵衆乘)과 성문연각승(聲門緣覺乘)과 제불여래승(諸佛如來乘)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승(諸乘)은 유심(有心)에서 전변(轉變)한 것이므로 제승은 끝내 무심(究竟無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만약에 그 각종의 유심이 없어지면 제승(諸乘)과 그 승(乘)에 의탁할 승자(乘者)도 없어져 ‘승(乘)’이라 하는 명칭조차 세울 수 없는 대무심지(大無心地)가 된다. 이는 제승을 초월한 최상유일승(最上唯一乘)이나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분별하여 제승을 설명한다.” (諸天及梵乘, 聲門緣覺乘, 諸佛如來乘. 我說諸乘, 及至有心轉, 諸乘非究竟. 若彼心滅盡, 無乘及乘者, 無有乘建立. 我說爲一乘, 引導衆生故, 分別說諸乘.) * 지인주(智人舟) : 미망(迷妄)을 없애고 진여(眞如)를 깨달은 사람의 배. 주(舟)는 불교의 교의인 승(乘)을 비유한 것임. * 빈병역(貧病域) : 가난하고 병이 드는 경우. 이 구절은 마음이 청정하고 욕심이 없어서 가난하고 병이 들어도 편안하게 여긴다는 뜻. * 생사류(生死流) : 사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멸의 변화를 겪기 때문에 생사의 흐름이라 한 것임. 이 구절은 시간의 흐름에 맡겨 순응하며 생사의 고뇌로부터 해탈한다는 뜻. * 《열반경(涅槃經)》에 보살승(菩薩乘)을 수행하는 자는 길들여졌으며 힘이 좋은 젊은 말에, 성문승(聲聞乘)을 수행하는 자는 젊고 힘이 좋은 말에, 성불할 수 없는 자인 천제(闡提)는 늙고 힘없는 말에 비유한 내용이 있다. 소승불교에서는 천제가 성불할 수 없다고 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중생들이 불성을 지니고 있어 수행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은 ‘누구나 성불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그대는 번거롭게 말을 가지고 나의 수행을 비유해 깨우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 《莊子․天道》에 "그대가 나를 소라고 부르면 소라고 여기며, 그대가 나를 말이라 부르면 말이라고 여긴다.(子呼我牛也, 而謂之牛; 呼我馬也, 而謂之馬.)"라는 구절이 있다. 《金剛經五家解》에는 "소라고 부르면 곧 소이고, 말이라 부르면 곧 말이다. 법(法)은 본래 없음이니, 없다고 말해도 또한 법체(法體)에 어긋나지 않는다. 법은 본래 있음이니, 있다고 해도 또한 법체에 어긋나지 않는다.(喚牛卽牛, 呼馬卽馬. 法本是無, 道無, 亦不乖法體; 法本是有, 道有, 亦不乖法體.)"는 구절이 있다. * 식복(植福) : 선행을 하여 그 보답으로 복을 받는 것을 밭에다 씨를 뿌려 수확하는 것에 비유함. 승조(僧肇)의 《維摩詰經》 주에 "가섭은 가난한 사람인데, 옛날에 선행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동네에 태어났다(迦葉以貧人, 昔不食福, 故生貧里.)"라는 내용이 나온다. * 가섭(迦葉) : 불제자 가운데 성이 가섭인 자는 5명이다. 대제자인 마하가섭(摩訶迦葉)은 매우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재물을 버린 인물이다. 십력사섭(十力迦葉)은 석가모니의 당제(堂弟)이다. 나머지 세 가섭은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넷째인 구루진불(拘樓秦佛), 다섯째인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여섯째인 가섭불(迦葉佛)이다. 그 중에 승조가 말한 가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 구인(求仁) : 《論語․述而》, "자공이 공자에게 묻기를, '백이, 숙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말하길, '옛날의 현인이다.' 말하길, 원망했습니까? 말하길,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또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子貢問孔子曰 : 伯夷, 叔弟, 何人也? 曰 : 古之賢人也. 曰 : 怨乎? 曰 : 求仁而得仁, 又何怨!" * 소공구(笑孔丘) : 공자를 비웃다. 구(丘)는 공자의 이름. “객이 말하길, ‘공씨는 무슨 일을 하는가?’ 자로가 응답하지 않으니 자공이 대답하였다. ‘공씨는 본성이 충성과 믿음을 지키며, 몸은 어짊과 의로움을 행하고, 예의와 음악을 꾸며 놓고, 인륜을 정해 놓았습니다. 위로는 임금께 충성을 다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교화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공씨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객은 웃으며 돌아갔다.” (客曰 : '孔氏者何治也?' 子路未應, 子貢對曰: '孔氏者, 性服忠信, 身行仁義, 飾禮樂, 選人倫, 上以忠于世主, 下以化于齊民, 將以利天下, 此孔氏之所治也.'··· 客乃笑而還.) 《莊子․漁父》. 위의 구와 더불어 이 구는 불교와 유교가 서로 다르지만 함부로 분별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 것이다. * 고도(鼓棹) : 배를 저을 때 박자에 맞춰 노를 두드리며 기운을 북돋는 것을 가리킴. * 최주(摧輈) : 수레의 끌채가 부러져 수레가 넘어짐을 가리킴. 輈는 위의 도(棹)와 함께 불승(佛乘)의 교법을 비유한 것으로, 중생이 수행하며 정진할 수도 있으며 도중에 좌절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 것임. * 문사자(聞思者) : 가르침을 듣고 얻은 문혜(聞慧), 이치를 사유하여 얻은 사혜(思慧), 수행으로 얻은 수혜(修慧)의 세 가지 지혜를 수행하는 자를 가리킴. “그러므로 너희들은 의당 듣고 생각하며 지혜를 닦아 더욱 증대시켜야 한다.” (是故汝等, 當以聞思修慧而自增益.)《佛遺敎經》 * 조수(阻修) : 길이 험난하고 요원함. * 공허화(空虛花) : 허공화(虛空華), 공화(空花)라고도 함. 불교에서, 원래 실체가 없는 현상 세계를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 실체가 있는 양 착각하는 것을 눈병을 앓는 사람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에 비유한 것임. 《楞伽經》“觀一切有爲, 猶如虛空華.” * 번뇌수(煩惱樹) : 수많은 번뇌를 가지가 무성한 나무에 비유한 것임. 불교에서는 탐(貪), 진(嗔), 치(痴), 만(慢), 의(疑), 악견(惡見)을 6대 근본번뇌로 간주하며, 그로 인해 8만 4천 가지의 번뇌가 생겨난다고 여김. * 멸상(滅想) : 인식활동을 중단하여 생각이 없게 된 상태. * 무기(無記) : 선(善)과 불선(不善)에 대한 분별과 판단이 소멸된 상태. * 생심(生心) : 어떤 일을 해내려는 욕심으로 마음 속에 망녕된 생각이 생겨나는 것. 《金剛般若波羅密經》,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어서는 아니 되며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어서도 아니 된다.(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 좌(坐) : 인(因)과 같은 뜻임. 그로 인하여, 그로 말미암아. * 유구(有求) : 수도를 하다보면 해탈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는데, 그 또한 망녕된 마음이어서 해탈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뜻. * 항오부귀촉(降吳復歸蜀) : 이 구절은 앞의 두 구절에서 말한 멸상(滅想)과 생심(生心) 모두 입도(入道)의 방법이 아님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삼국 촉(蜀)의 장수 황권이 귀환하지 못하고 위에 항복하면서 “저는 과분하게 주군인 유비의 남다른 대우를 받았는데, 오에 항복할 수도 없으며 촉으로 돌아갈 방도도 없어 귀순하려 합니다.”(臣過受劉主殊遇, 降吳不可, 還蜀無路, 是以歸命) 《三國志․蜀書․黃權傳》* 부도(不到) : 열반하여 피안의 불지(佛地)에 도달하지 못함을 의미함.

 

 

恭懿太子輓歌. 五首 공의태자 만가. 5수

 

* 공의태자(恭懿太子) : 숙종(肅宗)의 12번 째 아들인 이소(李佋)를 가리킴. 황후 장씨(張氏) 소생으로, 흥왕(興王)에 봉해졌다. 숙종이 몹시 총애했으나 8살에 사망했으며, 사후에 태자로 추봉되었다. 공의는 그의 묘호(廟號)이다.

 

1

何悟藏環早(하오장환조) 어찌 일찍이 금 고리 숨긴 것을 알았나?

纔知拜璧年(재지배벽년) 다만 알겠네, 벽옥에 절하던 나이였음을.

翀天王子去(충천왕자거) 하늘 높이 날아 왕자진처럼 떠나가거늘

對日聖君憐(대일성군련) 해를 마주하고 임금은 가엽게 여기시네.

樹轉宮猶出(수전궁유출) 수풀 사이 돌아서 궁중을 벗어나거늘

笳悲馬不前(가비마부전) 피리 소리 슬프며 말은 나아가질 않네.

雖蒙絶馳道(수몽절치도) 치도를 질러가도록 허락을 받았었건만

京兆別開阡(경조별개천) 이제 경조에서 별도로 묘도를 내어 놓았네.

 

* 장환(藏環) : 고리를 감추다. 진(晋)의 양호(羊祜)와 관련된 고사로써 태자의 총명함을 비유한 것임. 《獨異記》에 의하면, 양호가 세 살 때 유모를 시켜 이웃집의 나무 구멍에서 금환(金環)을 찾아내었다. 이웃집 사람 얘기로는 자기 아이가 일곱 살에 우물에 빠져 죽었으며 예전에 가지고 놀던 금고리는 잊어버렸다고 한다. 양호가 신통하게 금환을 찾아낸 것은 그의 전신이 이웃집 아들이었던 때문이다. * 배벽(拜璧) : 춘추시대 초공왕(楚共王)은 적자는 없이 서자 다섯을 두었다. 이에 태묘(太廟)의 마당에 몰래 옥을 묻고 그 자리에서 절을 하는 아들을 하늘이 정한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 때 제일 어린 평왕(平王)이 남에게 안겨 그 자리에서 절을 하였다. * 왕자(王子) : 왕자진(王子晉)을 가리킴. 주영왕(周靈王)에게 17세에 요절한 태자 진(晉)이 있었는데, 《열선전》에 신화적 인물로 묘사되었다. 생(笙)을 즐겨 불어 봉황 울음소리를 내었으며, 신선인 부구공(浮丘公)을 따라 숭산(嵩山)에서 수련한 후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 대일(對日) : 26세에 요절한 진명제(晋明帝) 사마소에 관한 고사. 어렸을 때 부친 원제(元帝)가 장안과 태양 중에 어느 것이 더 가까운지를 물으니 장안에선 사신이 오지만 해에서는 오는 이가 없기 때문에 장안이 더 가깝다 하였다. 원제가 기특하게 여기고 이튿날 군신이 연회하는 자리에 같은 질문을 했는데, 이번에는 해가 더 가깝다고 하였다. 원제가 왜 전과 말이 다르냐고 물었더니, 태양은 보이지만 장안은 보이지 않아 태양이 더 가깝다고 하였다. 이에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한다. 이 구절은 공의태자가 총명해서 천자의 사랑을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世说新语》* 유(猶) : 이미. 이미 지났다는 뜻이다. * 절치도(絶馳道) : 絶은 횡단한다는 뜻. 馳道는 임금이 다니는 길. 한성제(漢成帝)가 태자로 있을 때 원제(元帝)가 급히 불렀으나 치도를 가로질러 갈 수가 없어 빙 돌아가느라 부름에 늦었다. 원제는 늦게 온 이유를 듣고 태자가 치도를 가로질러 다닐 수 있도록 윤허하였다. * 경조(京兆) : 경조부(京兆府)의 행정장관인 경조윤(京兆尹)을 가리킴. 현종 개원(开元) 원년에 경조부를 설치하고 장안을 비롯 22개 현을 관할하였다. * 천(阡) : 묘도(墓道)를 가리킴.

 

 

 

2

蘭殿新恩切(난전신은절) 난전에 새로 내려진 은전 중하나

椒宮夕臨幽(초궁석림유) 초궁에서 저녁 되어 흐느껴 우시네.

白雲隨鳳管(백운수봉관) 흰구름은 왕자진의 생황 소리 따르건만

明月在龍樓(명월재용루) 밝은 달은 여전히 용루문에 떠 있구나.

人向靑山哭(인향청산곡) 사람들 청산 바라보며 통곡을 하고

天臨渭水愁(천림위수수) 하늘도 위수 가에서 시름에 잠겼네.

雞鳴常問膳(계명상문선) 닭 울면 문안하고 늘 무얼 드셨나 묻더니

今恨玉京留(금한옥경류) 이제는 옥경에 머무르시니 한스럽도다.

 

* 난전(蘭殿) : 향전(香殿)이라고도 함. 후비(后妃)가 거처하는 궁전. * 신은(新恩) : 사후에 은전을 내려 태자로 추봉(追封)한 것을 가리킴. * 초궁(椒宮) : 후비(后妃)의 거처. 본래 서한 때 황후가 거처하던 미앙궁(未央宮)의 숙방전(椒房殿)을 가리킴. 화초(花椒)나무의 꽃떨기로 만든 분말을 벽에 칠해 붙여진 이름으로, 향기로우며 목재를 갉아먹는 좀벌레를 막아준다고 함. * 림유(臨幽) : 애통해 하며 곡을 한다는 뜻이다. 臨은 조곡(弔哭)의 뜻. * 봉관(鳳管) : 생(笙)을 가리킴. 봉의 생김새를 본 따서 붙여진 이름. 이 구절은 생을 즐겨 불었던 주영왕(周靈王)의 태자 진(晋)처럼 승천했다는 뜻이다. * 용루(龍樓) : 태자궁(太子宮)의 용루문(龍樓門)을 가리킴. * 계명(雞鳴) : 주문왕(周文王)이 세자로 있을 때의 고사. 닭이 울면 항상 부친의 침실 앞에서 안부를 확인하였고, 식사를 마치신 후에는 어떤 음식을 드셨는지 확인하였다. * 옥경(玉京) : 도교에서 천제의 도읍을 옥경이라 한다. 태자가 승천해 옥경에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3

騎吹凌霜發(기취능상발) 기마 악대 서릿발 속에 출발하거늘

旌旗夾路陳(정기협로진) 깃발이 길을 끼고 양 옆에 늘어섰네.

禮容金節護(예용금절호) 장례식 절차를 경조윤이 감독하는데

冊命玉符新(책명옥부신) 태자 책봉으로 하사한 옥부절이 새롭네.

傅母悲香褓(부모비향보) 부모(傅姆)는 태자의 옷을 보며 슬퍼하고

君家擁畫輪(군가옹화륜) 임금은 장례용 수레 안에서 침통하시네.

射熊今夢帝(사웅금옹제) 지금 꿈에서 천제 만나 곰을 쏘고 있으니

秤象問何人(평상문하인) 코끼리 무게 재는 것을 누구에게 물으리?

 

* 기취(騎吹) : 말을 탄 취주 악대를 가리킴. * 예용(禮容) : 예절과 의식을 행하는 모양. * 금절(金節) : 구리로 만든 부절. 그것으로써 도독, 부윤, 자사, 태수를 가리키기도 함. 여기에서는 경조윤을 가리킴. * 옥부(玉符) : 태자가 패용하던 옥으로 만든 어부(魚符)를 가리킴. * 부모(傅母) : 부부(傅父)와 보모(保姆). 황실의 자녀를 돌보아 바르게 이끌어주는 역할을 맡은 나이든 남녀를 가리키며, 원래는 늙은 대부(大夫)와 그의 처를 선발했었음. 향보(香褓) : 향기로운 강보(襁褓). 褓는 영유아를 감싸는 포대기나 이불 혹은 어린애의 옷을 가리키기도 함. * 군가(君家) : 임금을 가리킴. 家는 명사 뒤에 붙는 어미(語尾)로 쓰여 별 뜻이 없다. * 옹(擁) : 타다. 싣다의 뜻. * 화륜(畫輪) : 바퀴에 옻칠을 한 수레를 가리킴. 임금이 조정 밖으로 애도하러 나갈 때 탄다. * 사웅(射熊) : 춘추시대 진(晋)의 조간자(趙簡子)가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꿈속에서 천제의 명을 받고 곰을 쏘아 죽인 일이 있다. * 칭상(秤象) : 조조(曹操)가 몹시 총애했으나 13세에 요절한 아들인 등애왕(鄧哀王) 조충(曹冲)에 관한 고사. 조조가 손권이 보낸 코끼리의 무게를 묻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으나 당시 대여섯 살이던 조충이 큰 배에 코끼리를 싣고 가라앉은 만큼 다른 물건을 실어서 무게를 재면 된다고 답을 하였다. 공의태자가 어리면서도 총명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4

蒼舒留帝寵(창서류제총) 창서는 죽어서도 황제의 총애 받았고

子晉有仙才(자진유선재) 왕자진은 신선의 재질 지니고 있었네.

五歲過人智(오세과인지) 다섯 살에도 남들보다 지혜가 뛰어났건만

三天使鶴催(삼천사학최) 삼청에서 학을 보내 어서 오길 재촉했구나.

心悲陽祿館(심비양록관) 양록관에서는 마음 깊이 슬퍼하거늘

目斷望思臺(목단망사대) 망사대 향하여 저 멀리 눈길을 보내네.

若道長安近(약도장안근) 장안이 가깝다고 말을 할 것 같으면

何爲更不來(하위갱불래) 어찌하여 다시금 돌아오지 않는가!

 

* 창서(蒼舒) : 조조의 여덟 번째 아들로 매우 영특했으나 요절한 등애왕(鄧哀王) 조충(曹冲)을 가리킴. 창서는 그의 자(字). 조충에 관해서는 바로 앞 시의 주를 참고 바람. * 자진(子晉) : 왕자진(王子晉)을 가리킴. 주영왕(周靈王)에게 17세에 요절한 태자 진(晉)이 있었는데, 《열선전》에 신화적 인물로 묘사되었다. 생(笙)을 즐겨 불어 봉황 울음소리를 내었으며, 신선인 부구공(浮丘公)을 따라 숭산(嵩山)에서 수련한 후 신선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 오세(五歲) : 이 구절은 조충이 어린 나이에 매우 총명했음을 말한 것임. * 삼천(三天) : 삼청(三淸)과 같다.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으로 신선이 거주하는 선경이다. 이 구절은 태자 진의 고사를 사용한 것으로, 천계에서 학이 내려와 자진의 승천을 재촉했다는 뜻이다. * 양록관(陽祿館) : 한나라 때 상림원 안에 있던 궁관. 비빈(妃嬪)의 거처로 이용되었다. 한성제(漢成帝) 때 반첩여(班倢伃)가 여기에서 출산했으나 요절하였다. * 목단(目斷) : 보이지 않는 먼 곳 끝까지 눈길을 보낸다는 뜻. * 망사대(望思臺) : 한무제(漢武帝)가 무고로 자살한 방태자(戾太子)를 위해 세운 대. 지금의 하남성 호성현(湖城縣) 서쪽에 있다. * 약도장안근(若道長安近) ; 26세에 요절한 진명제(晋明帝) 사마소(司馬紹)에 관한 고사. 어렸을 때 부친 원제(元帝)가 장안과 태양 중에 어느 것이 더 가까운지 물으니 장안에선 사신이 오지만 해에서는 오는 이가 없기 때문에 장안이 더 가깝다 하였다. 원제가 기특하게 여기고 이튿날 군신이 연회하는 자리에 같은 질문을 했는데, 이번에는 해가 더 가깝다고 하였다. 원제가 왜 전과 말이 다르냐고 물었더니, 태양은 보이지만 장안은 보이지 않아 태양이 더 가깝다고 하였다. 이에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한다.

 

5

西望昆池闊(서망곤지활) 서쪽을 조망하니 곤명지 광활하고

東瞻下杜平(동첨하두평) 동쪽을 바라보니 두성이 편평하구나.

山朝豫章館(산조예장관) 산은 예장관 마주하고 있는데

樹轉鳳凰城(수전봉황성) 숲은 봉황성 향해 뻗어있다네.

五校連旗色(오교연기색) 궁정 시위대의 깃발 색 이어지고

千門疊鼓聲(천문첩고성) 온 문마다 북소리는 퍼지어 간다.

金環如有驗(금환여유험) 금환의 이야기가 효험 있다면

還向畫堂生(환향화당생) 다시 화당으로 돌아와 태어나시리.

 

* 곤지(昆池) : 곤명지(昆明池). 한무제 때 조성된 못으로, 처음에는 수전을 훈련하던 곳이었으나 후에 뱃놀이를 하는 유원지로 변했다. 당대에는 이미 상당부분 육지화되었다. 옛터가 섬서성 서안시 서남쪽에 있다. * 하두(下杜) : 장안 남쪽의 두성(杜城)을 가리킴. 묘의 위치를 말한 것이다. * 산(山) : 산에 있는 능묘를 가리킴. * 조(朝) : 마주하고 있다는 뜻. * 예장관(豫章館) : 무제가 세운 관으로 곤명지 안에 있다. * 봉황성(鳳凰城) : 봉성(鳳城)이라고도 한다. 장안을 가리킨다. * 오교(五校) : 한나라 때 군대에 두었던 다섯 교위(校尉). 여기서는 궁정의 시위(侍衛)를 가리킴. * 첩고(疊鼓) : 북치는 소리를 나타냄. * 금환(金環) : 서진(西晋)의 양호(羊祜)와 관련된 고사로써 태자의 총명함을 비유한 것임. 《獨異記》에 의하면, 양호가 세 살 때 유모를 시켜 이웃집의 나무 구멍에서 금환(金環)을 찾아내었다. 이웃집 사람 얘기로는 자기 아이가 일곱 살에 우물에 빠져 죽었으며 예전에 가지고 놀던 금고리는 잊어버렸다고 한다. 양호가 신통하게 금환을 찾아낸 것은 그의 전신이 이웃집 아들이었던 때문이다. * 화당(畫堂) : 궁중의 채색 그림을 그린 방. 여기서는 특히 태자의 궁실을 가리킨 것임.

 

 

河南嚴尹弟見宿敝廬訪別, 人賦十韻(하남엄윤제견숙폐려방별, 인부십운) 아우 하남윤 엄무가 누추한 초가로 찾아와 묵고 작별을 고하여, 각자 10운으로 시를 지었다.

 

* 하남엄윤(河南嚴尹) : 엄무(嚴武)를 가리킴. 상원 원년 4월 이후부터 이듬해 5월 이전까지 하남윤(河南尹)을 지냈다. 당시 낙양이 사조의(史朝義)에게 점령되어 하남부의 치소를 잠시 장수(長水)에 설치하였다. * 방별(訪別) : 찾아와 작별을 고함.

 

上客能論道(상객능논도) 훌륭한 손님 도를 능히 논변하거늘

吾生學養蒙(오생학양몽) 이 몸은 몽매함 기르길 배우고 있네.

貧交世情外(빈교세정외) 빈천해도 세속의 정 벗어나 교유하나니

才子古人中(재자고인중) 재능 출중한 그대 옛사람과 한가지로다.

冠上方安豸(관상방안치) 관 위에는 바야흐로 해치 자리 잡았고

車邊已畫熊(거변이화웅) 수레 위에는 곰의 그림이 그려져 있네.

拂衣迎五馬(불의영오마) 옷을 떨치며 반가이 부윤을 맞이하거늘

垂手憑雙童(수수빙쌍동) 공손한 모습으로 두 시동 사이에 섰네.

花醥和松屑(화표화송설) 송홧가루 탄 맑은 술로 대접을 하며

茶香透竹叢(다향투죽총) 차의 향은 대나무 숲에 번져간다오.

薄霜澄夜月(박상징야월) 서리 얇게 내리고 밤의 달빛 맑으며

殘雪帶春風(잔설대춘풍) 아직 남은 눈에는 봄바람 불어오누나.

古壁蒼苔黑(고벽창태흑) 오래된 벽에 푸른 이끼 거뭇거뭇한데

寒山遠燒紅(한산원소홍) 추운 산 멀리에 들불 붉게 타오르네.

眼看東侯別(안간동후별) 나의 눈길 동쪽 길 위 가는 이 보고

心事北山同(심사북산동) 그대 마음은 북산 시편과 한가지겠지.

爲學輕先輩(위학경선배) 배웠어도 선배들을 경시하건만

何能訪老翁(하능방노옹) 어찌 늙은 나를 다 찾아오셨나?

欲知今日後(욕지금일후) 알게 되리라, 오늘 이후로부터

不樂爲車公(불락위차공) 차공 같은 그대 없어 아니 즐거울 지를.

 

* 상객(上客) : 귀빈과 같음. 엄무를 높여 부른 것이다. * 양몽(養蒙) : 몽매함을 기르다. 어리석음의 덕성을 길러 스스로를 숨긴 채 살며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몽매함으로 올바름을 기름은 성인이 해내는 일이다.”(蒙以养正, 聖功也.)《易 ·蒙》 * 빈교(貧交) ; 빈천지교(貧賤之交). 가난하고 미천한 상태 속에서의 사귐. 세태와 인정을 뛰어넘는 고상한 교제를 의미함. * 재자(才子) : 덕성과 재질이 출중한 사람. 엄무를 가리킨 것이다. * 안치(安豸) : 해치가 자리 잡다. 해치(獬豸)는 하나의 뿔을 가졌으며 시비와 선악을 분별한다는 전설 속의 동물. 한국에서는 해태라고 불림. 엄무는 어사중승(御史中丞)을 겸했는데, 어사는 법을 집행하기에 해치의 형상을 장식한 해치관을 법관(法冠)으로 착용하였음. * 화웅(畫熊) : 한나라 때의 법식에 작은 나라의 제후왕(諸侯王)은 수레에 곰 하나를 그려 넣었다. 한나라 때의 군(郡)과 제후의 왕국은 지위가 비슷하였다. 그래서 후대에 군의 태수(太守)와 주의 자사(刺史)를 제후라고 칭하기도 하였다. 또 당나라 때에는 부윤(府尹)과 큰 주의 자사가 서로 지위가 비슷하기에 제후에 비긴 것이다. 불의(拂衣) : 반가워 급히 옷매무새를 바로하고 맞으러 나간다는 뜻. * 오마(五馬) : 태수의 대칭(代稱). 한나라 때 태수가 다섯 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탔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여기서는 엄무를 가리킨 것이다. * 수수빙쌍동(垂手憑雙童) : 팔을 드리운다는 뜻의 수수(垂手)는 수수공립(垂手恭立)의 줄임말. 양 곁에 시종을 두고 공경스런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묘사한 것. * 화표(花醥) : 醥는 맑은 술. 송화가루를 섞어서 앞에 花자를 붙인 것이다. * 소홍(燒紅) : 농사를 짓기 위해 잡초 우거진 밭에 불을 놓아 태움을 의미함. * 동후(東侯) : 동으로 가는 길을 의미함. 侯는 堠와 통함. 흙을 쌓아 만든 이정표. 당나라 때 5리 지점에는 하나, 10리 지점에는 둘을 설치하였다. * 북산(北山) : 《詩·小雅》의 편명. “나랏일 끊임이 없어, 내 부모님 걱정하시네. (王事靡盬,忧我父母.)”라는 구절이 있음. 엄무 자신이 부모님께 근심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 차공(車公) : 동진(東晋)의 차윤(車胤)을 가리킴. 사대부의 모임에서 분위기를 잘 이끌어 환온(桓溫)이 성대한 연회가 있으면 반드시 그를 출석시켰는데, 만약 그가 참석하지 못하면 다들 “차공이 없어서 즐겁지 않다”고 하였다.《晋書·車胤傳》

 

 

送元中丞轉運江淮(송원중승전운강회) 조세를 운반하러 강회로 가는 원중승을 보내며.554

 

* 원중승(元中丞) : 원재(元載). 숙종의 신임을 받고 나라 회계를 담당하였다. 숙종 건원 2년에 어사대(御史臺)의 장관인 중승으로 있다가 강회전운사(江淮轉運使)로 나갔다. * 전운(轉運) : 지방에서 걷어들인 세금과 곡물을 서울로 운반하는 것. * 강회(江淮) : 장강(長江)과 회하(淮河). 혹은 그 일대 지역을 가리킴.

 

薄稅歸天府(박세귀천부) 조세는 적게 거둬 조정으로 들여야 하며

輕徭賴使臣(경요뇌사신) 요역을 가볍게 함은 사신에게 달렸네.

歡沾賜帛老(환첨사백노) 노인에게 비단을 하사하니 기쁨에 젖고

恩及卷綃人(은급권초인) 은혜가 남쪽 바다 백성들에게도 미쳐가네.

去問珠官俗(거문주관속) 가서는 주관 고을의 풍속을 물으시며

來經石劫春(내경석겁춘) 올 때에는 거북손 번성하는 봄을 지나리.

東南御亭上(동남어정상) 동남쪽의 어정 위에도 올라 보시고

莫使有風塵(막사유풍진) 풍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처리해주시길...

* 천부(天府) : 조정 혹은 조정의 창고를 가리킴. * 요(徭) : 조정이나 지방 관아에서 백성에게 부과하는 노역. 명목이 다양해 과도한 과잉 수탈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 사백로(賜帛老) : 한 문제 때에 90세 이상의 노인에게 비단 2필을 하사한 고사가 있음. * 권초인(卷綃人) : 비단을 걷는 사람이란 뜻으로, 교인(鮫人)을 가리킴. 남조(南朝) 양(梁)의 도홍경(陶弘景)이 지은 〈수선부(水仙賦)〉에 교인의 집에서 비단을 걷는다.“는 구절이 있다.(卷綃乎鮫人之室.). 교인은 본래 전설 속의 인어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중국 동남 연해에서 어업과 진주를 채취하며 사는 토착민을 가리킴.《搜神記》에는 “남해 바깥에 인어가 있는데, 물고기처럼 물에 살며 길쌈질은 폐하지 않았다. 그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 구술이 나오게 할 수 있다.” * 고 하였다. * 주관(珠官) : 삼국 오(吳)의 군명(郡名). 지금 광서성 합포현(合浦縣) 동북 지역. 근해에서 진주가 산출되어 진주 채취를 감독하는 관리를 두어 생겨난 지명이다. 여기서는 강소성, 절강성 해역에도 진주가 산출되어 그 고사를 가져다 쓴 것이다. * 석겁(石劫) : 석겁(石蜐)과 같음. 거북손. 딱딱한 껍질을 가진 갑각류의 일종으로, 바닷가 바위에 붙어 살며 속 살은 식용한다. 봄에 번성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꽃의 일종으로 간주하였다. * 어정(御亭) : 삼국 오(吳)의 손권(孫權)이 세운 정자 이름. 지금 강소성 동남부 소주(苏州)와 무석(无锡) 일대인 오현(吳縣)에 있었으며, 수문제 때에는 역(驛)을 세웠다. * 풍진(風塵) : 민폐의 발생이나 소란스런 사태가 생겨남을 의미한다. 양(梁)의 유견오(庾肩吾) 시에 “어정에서 한번 돌아보니, 풍진에 천리가 어둡다(御亭一回望, 風塵千里昏.)”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는 이를 빌어 과도한 부세로 백성의 안정을 파괴하지 않도록 당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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